과거보다 미래를 : 문재인 정부 100일을 맞이하여

2017년 8월 16일

국회의원 유승민

 

내일은 문재인 정부 취임 100일입니다.

지난 대선에서 경쟁했던 후보로서 저는 대한민국을 위해 승자가 잘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급적 말을 아꼈습니다.

그러나 지난 100일간 문재인 정부의 행적을 보면서 이 나라가 이대로 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몇 마디 苦言을 하고자 합니다.

 

 

1.안보

 

대한민국의 안보가 최악의 위기입니다.

안보위기가 온 것이 문재인 정부만의 책임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안보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책임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국민이 지도자로 선출한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과거 보수정권의 안보를 ‘가짜안보,’ ‘안보적폐’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서는 역대 어느 정부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북한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핵과 미사일 개발을 일관되게 추진해왔고, 진보정권은 이를 방치하거나 심지어 현금을 제공하기까지 했으며, 보수정권은 실효성 있는 제재와 압박을 가하지 못하고 말만 앞선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보수정권의 안보무능을 비판한 것은 선거까지만 유효했을 뿐입니다.

 

이제는 대통령으로서 안보위기를 해결하는 지도자의 능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나 지난 100일 동안 보여준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는 한마디로 無能입니다.

그 무능은 안보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전략의 부재 때문입니다.

지도자의 視界가 미래에 있지 않고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새 정부 외교안보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6월 말의 한미정상회담은 동맹의 굳건한 앞날을 약속하기에는 부족한 미봉책이었고 동문서답이었습니다.

북한이 ICBM을 발사한 직후인 7월 초의 베를린 선언은 17년 전의 6.15 선언, 10년 전의 10.4 선언으로 되돌아가 북에 대화를 구걸하는 것이었습니다.

북의 핵미사일이 현실이 된 2017년의 안보상황은 17년 전이나 10년 전과 질적으로 다른데 대통령의 생각은 그 때 그 시절에 머물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국을 위협하고 미국과 북한이 험악한 말들을 주고 받는 현재의 상황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를 상황입니다.

이 상황에서 대통령은 거듭 북에게 대화하자고 매달리고, “전쟁은 안된다”면서 평화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어느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평화를 원합니다.

일시적 평화가 아니라 진정한 평화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안보위기의 주범인 북한이, 대한민국의 주적인 북한이 핵미사일을 앞세워 대한민국을 침략하려 한다면 대한민국은 그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有備無患입니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 우리는 전쟁에 완벽하게 대비해야 합니다.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면서 우리의 국방력을 획기적으로 증강해서 아무도 원치 않는 전쟁이 발발할 경우 초전박살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대통령은 “전쟁은 안된다. 그러나 북한이 전쟁을 도발한다면 북한은 끝이다”라고 항상 생각하고 말해야 합니다.

북이 핵무기를 완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한미의 핵 공유를 추진하고 유사시 북의 핵무기를 초반에 격멸할 수 있는 탐지•공격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대화도 필요하면 해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문재인 정부의 대화 제안은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북한은 핵미사일 도발을 계속하면서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여 북한이 오래 동안 원하던 핵보유국 인정, 체제보장, 평화협정, 주한미군 철수를 노리고 있습니다.

만약 미국이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러한 북미대화에 응하여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거나, 미국과 중국이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모종의 빅딜에 합의할 경우 북의 핵미사일은 우리 혼자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됩니다.

그런 상황이 과연 전쟁은 사라지고 평화가 오는 상황입니까?

대선전 토론회에서 저는 문재인 후보에게 ‘Korea Passing’에 대해 물었으나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고, 그 주변 인사들은 저의 문제 제기를 ‘콩글리시’ 운운하며 비난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런데 지금 문재인 정부는 북에 대화를 구걸하면서 코리아 패싱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대화의 타이밍이 아니라 초강력 제재와 압박을 가해야 할 때입니다.

과거의 제재와 압박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만큼 강력하지 못했고, 특히 중국의 미온적 태도가 늘 문제였습니다.

제재와 압박을 위해 한미일은 긴밀하게 공조해야 하고, 한미공조로 중국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지금은 핵동결이나 단계적 접근을 섣불리 애기할 때가 아니라 우리의 목표는 오로지 북의 핵무기를 제거하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미국이 북한의 핵ICBM 위협에 어설픈 타협으로 봉합하지 않고 제재와 압박의 수위를 높이도록, 미국이 중국의 변화를 이끌어내도록 미국을 설득해야 합니다.

지금 필요한 대화는 북한과의 대화가 아니라 미국, 중국과의 대화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역할을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운전석에 앉아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핵심인사가 “핵과 미사일은 미국이 북한과 알아서 풀어야 할 문제다”라고 한 것은 집권세력의 인식이 얼마나 한심한 수준인지를 보여줍니다.

정말 이런 생각을 한다면 동북아의 격랑 속에서 대한민국은 운전석은커녕 조수석에도 앉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THAAD 배치와 군 복무기간 단축, 이 두 가지는 문재인 정부가 안보에서 얼마나 무능하고 불안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 THAAD 배치와 중국의 경제보복에 대해 “외교적으로 해결할 복안이 있다”고 했으나 그런 복안은 없었습니다.

발사대 트럭 6대와 요격 미사일 48발을 배치하는 일에 무슨 대단한 환경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은 빨리 하면 되는 것입니다.

THAAD 배치를 두고 갈팡질팡 하는 사이에 한미동맹은 신뢰에 금이 가고 중국의 경제보복은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탄두를 스커드나 노동 미사일에 실어 우리를 공격할 경우 아무런 방어수단이 없다는 현실을 뻔히 알면서도 결정을 못하는 무능한 정부입니다.

 

군 복무기간 단축은 참으로 무책임한 처사입니다.

노무현 정권이 병의 복무기간을 24개월에서 18개월(육군 병 기준)로 줄이기 시작했고 이명박 정권이 여론의 눈치를 살피느라 이를 중단하지 못하던 중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피격 사건이 발생하고서야 이 단축과정은 21개월에서 멈춰섰습니다.

안보위기가 최악인 상황에서 군 복무기간 단축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을 과연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의 과거로 돌아가지 말고 지금의 안보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만 생각해야 합니다.

북의 핵미사일이 게임체인저라면, 이 위기를 돌파해내는 우리 대한민국의 게임체인저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핵미사일 위협을 분쇄하는 새로운 한미연합전력,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압박, 중국의 변화 유도에 그 길이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안보에 대한 생각과 전략을 바꾸려면 외교안보 라인의 재정비가 불가피합니다.

베를린 선언도 잊어버려야 합니다.

베를린 선언에 집착한다면 또 다른 드레스덴 선언으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가 임기 마지막 해에 남북정상회담을 해서 별 효과가 없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문재인 정부가 임기 초반에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면 그런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저는 문재인 대통령께서 지금의 안보위기에 대해 백지에서 다시 생각해보기를 강력히 권합니다.

 

 

2. 민생

 

안보위기가 워낙 엄중한 시기라 민생과 관련된 문재인 정부의 정책들이 덜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중요한 정책들에 대해서는 고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문재인 대통령께서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환상을 버리기를 권합니다.

소위 소득주도성장은 공공 일자리 확대,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다양한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기초생활보장의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구직수당 등의 다양한 복지정책도 사실 국가가 현금을 주거나 부담을 덜어줘서 소득을 늘려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로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늘어나고 소비가 늘어나서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는 환상에 가깝습니다.

말이 소득주도성장이지, 이는 성장정책이 아니라 복지나 노동정책입니다.

복지를 늘리면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허황된 생각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19년간 경제성장률은 5년마다 1%포인트씩 하락했습니다.

이 저성장 추세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우리 경제의 혁신 뿐입니다.

대기업, 중소기업, 창업기업을 모두 망라한 혁신이 우리 경제를 살릴 유일한 길입니다.

재벌개혁도 경제정의와 혁신성장 모두를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은 말만 하고 소득주도성장에만 매달린다면 5년 뒤 우리 경제의 성적표는 참담할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 경제의 번영은 그들이 혁신성장의 길로 달려왔기 때문입니다.

노동, 복지, 교육, 주택, 의료 등 민생 분야에서 고통받는 서민들에게 국가가 안전망을 제공하고 차별을 시정하는 것은 양극화를 해소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시대적 과제로서 저는 적극 찬성합니다.

그러나 양극화 해소는 그 자체로 중요한 목표일 뿐이며 소득주도성장을 성장의 해법이라고 우기는 어리석음은 버려야 할 때입니다.

 

공무원 등 공공일자리 확대 정책부터 대폭 수정되어야 합니다.

세금으로 공공일자리를 만드는 정책은 쉽지만 비효율적인 정책입니다.

최근 추경의 심의과정에서 보았듯이 세금으로 공공일자리 81만개를 만드는 정책을 계속 고집한다면 예산심의 때마다 저항에 부딪힐 것입니다.

81만개라는 숫자를 포기하고 앞으로 5년간 꼭 필요한 공무원과 공공부문 일자리에 대해 큰 합의를 해야 합니다.

 

복지, 노동, 교육, 보육, 연금, 의료, 주택 등의 분야에 있어서 문재인 정부는 책임있는 정책을 펴야 합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말을 제가 박근혜 정부에 이어서 문재인 정부에게도 똑같이 해야 하는 상황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정책들은 그 하나 하나가 앞으로 5년간 수조에서 수십조원의 정부예산이 필요한 것들입니다.

5년간 178조원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정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돈이 어디에서 나오느냐입니다.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의 재원확보 방안을 보면 세입확충으로 82.6조원, 세출절감으로 95.4조원, 총 178조원을 마련한다는 것입니다.

세입확충 82.6조원 중 60.5조원이 세수의 자연증가를 전제한 것으로

기본적으로 증세는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증세 없는 복지를 고집하다 담배세 인상, 소득세 연말정산 파동을 겪은 박근혜 정부의 공약가계부와 정확하게 닮은 꼴입니다.

대기업과 부자에게 법인세와 소득세를 매년 3〜4조원을 더 걷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새로운 정책에 필요한 엄청난 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

여기에 대한 해결책도 없이 여론의 지지가 높은 정책들을 거의 매일 쏟아내는 문재인 정부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정부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돈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저부담-저복지에서 저부담-중복지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중복지를 하겠다면 국민적 합의 위에 중부담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중부담-중복지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해왔습니다.

매년 조세부담율을 조금씩 올리는 국민적 합의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한 합의가 어렵다면 문재인 정부는 빈곤층, 차상위계층 등 국가의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는 국민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옳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국회에 제출할 2018년 세출예산안은 중복지를 지향하고, 세제개편안은 저부담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근본적 모순을 안고 있는 세입세출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는 없습니다.

가을의 정기국회는 문재인 정부의 무책임한 민생정책을 수정해야 합니다.

뒷감당도 못할 모순 덩어리의 세입세출안을 던져놓고 여론의 지지만을 앞세워 밀어붙인다면 그런 무책임한 태도야말로 전형적인 포퓰리즘입니다.

국민들께서 그 본질을 알게 된다면 여론의 지지도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신고리 5,6호기 중단 여부를 공론화위원회의 판단에 맡기기로 한 조치는 충격적입니다.

공론화위원회의 면면을 볼 때 이 위원회가 무슨 권능과 자격으로 국가 에너지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중요한 문제를 저렇게 급조된 위원회의 손에 맡긴다면 국가는, 정부는 왜 존재하는 것인지, 우리는 왜 선거를 치르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문재인 정부는 원자력, 석탄, 가스, 신재생 등 에너지 믹스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해 정부 스스로 계획을 세워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에너지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3. 적폐와 개혁

 

마지막으로 적폐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자세와 철학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헛된 약속임은 이미 문재인 정부의 인사에서 드러났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고위공직자 임명 배제의 기준으로 5대 적폐(부동산투기, 병역기피, 세금탈루, 논문표절, 위장전입)를 약속한 것은 대통령 본인이었습니다.

이 약속을 어기고도 대통령은 사과 한마디 없었습니다.

 

검찰, 경찰, 국정원, 공영방송, 문화예술 등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삼는 분야에서 과연 미래를 향한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지는지, 아니면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비난하던 과거 정권들과 다를 바 없이 새로운 적폐를 만들 것인지, 국민들은 지켜볼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를 말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정의, 자유, 평등, 공정, 법치가 살아 숨쉬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들었습니다.

41%의 지지율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과 문재인 정부의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만들려면 과거보다 미래를 보고, 남보다 자신에게 더 엄격하기를 바랍니다.

80년대 운동권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안보, 경제, 복지, 교육 등 국정을 재단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머지않아 또 다른 적폐가 되고 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