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회가 갈 수 없는 곳은 아름다운 민주주의가 존재하고 있는 북조선

2019.06.12 07:11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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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제에 대한 유엔결의문 전문

게재지명 조선일보, 동아일보

1947년 11월 21일

UN결의문 전문

1947년 10월 14일 國聯총회에서 채택된 朝鮮문제에 관한 채택안=

朝鮮국민의 독립에 대한 긴박하고 정당한 요구를 인정하여 朝鮮을 민족적 독립국가로 재건할 것과 其後 전점령군을 최단기일이내에 철퇴시킬 것을 확신하여 朝鮮人 대표자의 참가없이는 朝鮮국민의 자유와 독립은 공명정대히 해결될 수 없다는 종전의 결정과 朝鮮국민중에서 선출된 대표자들에 의한 참가를 촉진할 목적으로 國聯朝鮮臨時委員會(이하 위원회라 칭함)의 설치안을 재인식하여

1) 위원회는 濠洲 캐나다 中國 엘살바도르 프랑스 印度 필리핀共和國 시리아 급 우크라이나(소비에트)共和國의 각 대표로 구성하기로 결정함

2) 위원회가 朝鮮국민의 자유 급 독립의 긴급달성에 관하여 협의할 수 있는 대표자(이 대표자들이 국민회의를 구성하여 朝鮮중앙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를 선출하기 위하여 적령자선거권을 기초로 비밀투표에 의하여 1947년 3월 31일이내에 선거를 실시함을 건의함. 각 투표지구 又는 지대로부터의 대표자수는 인구에 비례하여야 하며 선거는 위원회의 감시하에 시행하여야 함

3) 선거후 가급적 속히 國民議會를 소집하여 중앙정부를 형성하며 위원회에 정부형성에 관한 통고를 하기를 건의함

4) 중앙정부수립 즉시로 정부는 위원회와 좌기사항에 관하여 협의할 것을 건의함

가) 그 자신의 국민보안군을 편성하여 이에 포함되지 않는 모든 군사 급 반군사단체를 해산함

나) 남북조선의 군사령관 급 민정당국으로부터 정권을 인수함

다) 朝鮮으로부터 가급적 속히 또는 가능하다면 90일이내에 점령군의 완전 철퇴에 관하여 점령국과 타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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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10.30. 미국

[ …… 우리가 조선에 파견할 위원회를 통하여 조선에서 조선인과 협의할 것을 제의한다. …….

…… 누가 조선서 정당히 선거된 대표인지를 알 방도가 없다…….

…… 이 문제를 당지 뉴욕에 옮기는 것은 단지 약 2년간 조선에서 存在하던 徒爲와 無爲를 최소 1년 더 계속하려는 방법을 채택하기 위한 것임에 불과 ……. ]

유엔 미대표 덜레스, 조선독립계획과 조선인과의 상의문제 언명

게재지명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서울신문

게재일자 1947년 10월 31일, 1947년 11월 01일

[레이크썩세스30日發UP 朝鮮] 미국은 조선인을 UN에 초청하여 조선의 운명에 관한 토의에 참가시키라는 소련의 제안은 ‘실행성이 없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그 대신 UN 임시위원회로 하여금 조선에 갈 권한을 부여하여 여차한 토의를 하도록 할 것을 제의하였다. 미국의 이 제안은 소련의 제안을 미국결의안의 범위내로 전환시키려는 조치인데 미국대표 존 포스터 덜레스는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소련의 조선인과의 협의에 관한 제안은 최소 현재 소련이 조선 독립문제를 UN의 토의사항으로 할 것을 인정할 용의가 있으며 또한 소련이 모종 형식의 조선인과의 협의를 행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제안은 또한 소련의 협의는 군사당국과 결탁한 노력의 덕택으로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정으로 조선민족을 대표하는 조선인과 행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로서는 여는 이 제안을 환영한다.

그러나 소련이 절차에 관한 문제를 조선인대표를 총회에서 초청함으로써 해결하기를 원하는 것은 전연 실현성이 없는 것이다. 미국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협의를 금번에 행하지 말고 우리가 조선에 파견할 위원회를 통하여 조선에서 조선인과 협의할 것을 제의한다. 그러므로 미국은 협의조항에 관한 제안에 대하여 임시위원회가 조선에 가서 여하한 협의를 행할 권한을 부여할 것을 부가하는 수정안을 제출한다.

UN위원회는 당지에 있어서는 누가 조선서 정당히 선거된 대표인지를 알 방도가 없다. 소련 결의안이 문제의 핵심인 진정으로 조선민족을 대표하는 인물들과의 협의문제를 정확히 지적하고 있음은 완전히 명백하다.

그러나 이 문제는 바로 미소 양국이 조선에 있어 해결할 수 없어 UN이 해결을 짓지 않으면 안될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기에 앉아서는 할 수가 없다. 이 문제를 당지 뉴욕에 옮기는 것은 단지 약 2년간 조선에서 存在하던 徒爲와 無爲를 최소 1년 더 계속하려는 방법을 채택하기 위한 것임에 불과하다. 우리는 협의의 실현을 위한 실제적인 방법을 발견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미국은 소련의 제안 협의를 당지에서 정치위원회가 행하는 대신 조선에서 UN위원회가 행할 것으로 수정하여 이를 수낙하려는 것이다.”

(경향, 조선, 동아, 서울, 1947.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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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측 수정안에 41대 영(13표 기권 그중 소련블록 6개국 포함)으로 표결 …….

…… 소련대표는 즉시로 소련은 여하한 위원회라도 이를 보이콧트할 것이라고 언명 ……. ]

유엔정치위원회, 미국의 조선에 대한 유엔감시위원 파견제안 가결

게재지명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서울신문

1947년 11월 01일

[레이크썩세스31日發UP 朝鮮]강력한 UN총회 정치안전보장위원회는 20일 드디어 41대 영표(기권 7표)로 조선에 UN監視委員會를 파견하는 제안을 가결하였다. 이에 대하여 안드레이 그로미코 소련대표는 즉시로 소련은 여하한 위원회라도 이를 보이콧트할 것이라고 언명하였다.

[레이크썩세스31日發AP 合同]UN總會 政治委員會에서는 30일 상오 하오를 통하여 소련블록과 미측 진영은 서로 격렬한 논쟁을 거듭하면서 1件 1件 표결하여 나갔는데 그 경과는 여좌하다.

1. 먼저 조선대표를 UN 토의에 참가시키자는 소측 제안에 대한 미측 수정안에 41대 영(13표 기권 그중 소련블록 6개국 포함)으로 표결되었다.

2. 이 표결후에 소련대표 그로미코는 자측 제안에 대한 표결을 요청하였던 바 (35對 6票)로 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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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동 표결 토의 중 미대표 존 포스터 덜레스는 “조선사태에 관하여 조선 독립문제에 관해서 미소간에 2년간의 정돈상태가 계속된 것으로 말미암아 조선에는 폭발적 상태가 존재하고 있다”라고 말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소련대표 그로미코는 이를 반박하여 “남조선에서는 친일파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폭발적 상태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남조선에만 관한 사태인 것이다. 뿐만아니라 미측 대표는 우리가 여사한 친일파와 협의할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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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11.4. 미국

[ …… 위원회가 갈 수 없는 곳은 아름다운 민주주의가 존재하고 있는 북조선이며 위원회의 시찰이 환영되는 곳은 공포할 상황이 존재하고 있는 남조선이라는 것은 기이한 일 ………

…… 조선에서 모든 군대를 철퇴시키는 것은 혼돈과 내란을 초래할 것 …….. ]

유엔의 유엔임시조선위원회 설치에 대한 미소의 견해

게재지명 조선일보, 동아일보

1947년 11월 06일

[레이크 썩세스 5일 中央社發共立]4일 미국은 先週에 國聯總會政治委員會가 설치하기로 결정한 國聯臨時朝鮮委員會로 하여금 이에 대한 조선인대표선거를 감시케 할 것을 정식 동의하였다.

금번 동의는 또한 실제에 있어서 國聯臨時朝鮮委員會에 대하여 조선인대변인 선거뿐만 아니라 조선임시정부수립까지 감독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동안에 의하면 國聯朝鮮委員會는 조선독립에 관한 미원안에 의하여 조선정부수립과 점령군철퇴를 감독하는 일절의 國聯의 책임을 이행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또한 조선정부수립후 가급적으로 10일내로 점령군의 철퇴를 주장하므로써 미원안을 강화시켰다. 미국은 또한 양 지구별 선거보다도 전국적 선거를 희망한다는 중국 인도의 제안을 수락하였다. 각 대표간에는 격열한 논전이 전개되었는데 각대표의 발언요지는 여좌하다.

[레이크 썩세스 5일發 朝鮮]? 소대표연설

“共同委員會가 실패한 원인은 전혀 미국의 과오에 있다. 미군정관리와 국무성은 비난을 소련정부에 전가시키려고 사실을 왜곡하였다. 이는 현 미국외교의 상투수단이다. 북조선에서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남조선의 사태는 대단히 다르다. 인민의 위원회들에게는 권한이 없으며 민선된 정부기관이 없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식의 통치자가 유지되고 있다. 所謂 過渡立法議院의 90명 의원중 45명은 관선의원이다. 남조선에서는 농지개혁이 실시되지 않았다. 농민의 80%는 그들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지 못하며 重稅를 물지 않으면 안 된다. 남조선에서는 노동법이 없다. 8시간노동제는 公文에 지나지 않으며 전혀 준수되지 않고 있다. 그들은 미군의 묵인하에 행정계 及 경찰내에서 세력을 견고히 하고 있다.

미당국은 남조선에 있어 조선인들에게 惡政을 강요하고 있으며 미국은 조선내의 반민주주의세력에게 그들의 정책을 의존시키고 있다. 조선에 국련위원회를 설치하자는 미제안은 미국 직접 혹은 국련엄호하에 타국내정에 간섭하려는 放逸한 희망을 품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독립민주국가의 수립을 진실로 원하는 사람이라면 소련제안을 시인할 것이다. 미국의 소련안 반대는 미국은 조선을 미확장정책의 대상으로 변형하려 하고 있다고 밖에는 해석할 도리가 없다. 조선인들은 미국의 노예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며 자유와 독립을 원한다.

재조선미군당국은 전에 일본이 소유하였던 모든 부 及 공업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인은 조선에 오랫동안 駐留할 의사이다. 미 신문에 의하면 李博士같은 반역자는 이미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제안하였다 한다. 미국은 조선의 일부를 西美戰爭 결과 필리핀에 설치한 것과 같은 군사기지로 화하려고 하고 있다. 본위원회는 미국제안을 거부하고 소련제안을 수락할 것을 요청하는 바이다.”

[레이크 썩세스 5일發 朝鮮]? 미대표 논박

4일 하오의 國聯政治委員會 조선문제 토의에서 그로미코 소련대표의 연설에 뒤이어 존 덜레스 미국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제 각 국대표들은 왜 美蘇共同委員會가 결렬되었든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소연방대표들이 행한 연설은 過般 來共同委員會에서 미국대표들이 連日連月 들어온 끝없는 논의의 견본에 불과한 것이다.

余는 앞서 북조선의 소련행정을 비난한 일은 없으며 다만 모스크바협정이 난관에 봉착하였으므로 누구를 책함이 없이 國聯이 이 난관을 타개하기 위하여 간섭할 것을 영국이 요청한 사실을 지적하였을 뿐이다. 余는 개회사에서 제시한 바 원칙을 고집할 의도이며 지금 소련을 논박할 의사는 없다. 북조선에 건설된 소위 아름다운 민주주의는 기묘하게도 조선인이 잘 아는 제도가 아니고 소련이라는 외국세력의 제도이다. 이전에는 그리 알지 못하였던 조선인이 자발적으로 소련표본을 정확히 그대로 채용하였다는 것은 기묘한 일이다.

한편 그로미코治의 말대로 하면 남조선의 상황은 실로 경악할 일이다. 그는 일제시대보다도 더욱 나쁘다. 조선에 위원회를 파견하자는 제안에 대하여 미국은 이에 동의하나 소련은 이에 반대하고 위원회를 보이코트하려 한다. 현재 그를 원하는 것은 어떤 정부이며 그를 원하지 않는 것은 어떠한 정부인가? 위원회가 갈 수 없는 곳은 아름다운 민주주의가 존재하고 있는 북조선이며 위원회의 시찰이 환영되는 곳은 공포할 상황이 존재하고 있는 남조선이라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그러나 금일 이곳에서 제시된 것 같은 환상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은 시간의 허비이다. 조선보안대설치 이전에 돌연히 조선에서 모든 군대를 철퇴시키는 것은 혼돈과 내란을 초래할 것이다. 우리는 조선인이 이보담은 나은 운명을 향유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1947.12.3. 김구

[ …… 대체로 UN 결의안을 지지하는 바다. ……..

…… 방해가 제거되는 대로 북한이 참가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 의연히 총선거 …….

…… 법리상으로나 국제관계상으로 보아 통일정부일 것이요 단독정부는 아닐 것이다. …….. ]

1947. 12. 3. 전민족 단결 문제에 대하여

一. 정부수립 문제

우리는 자신으로서 즉시에 절대적 자주이며 남북을 통한 통일적인 독립정부를 우리 나라에 수립하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지 않는 국제적 제재가 있는 이상 우리가 우리의 요구를 달성하는데 이 국제적 제재를 합법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제일 조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UN에 한국문제를 제기하여 정당히 해결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UN이 한국문제를 정식으로 상정하여 토론한 결과 UN 감시 하에서 신탁 없이 또 내정간섭 없는 남북을 통한 총선거로써 자주 통일 독립 정부를 우리 나라에 수립하도록 협력하기로 충족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아직까지 한국의 정식대표를 참가시키지 아니하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지 아니하는 바는 아니나 대체로 UN 결의안을 지지하는 바다.

혹자는 소련의 보이코트로 인하여 UN안이 실시 못된다고 우려하나 UN은 그 자신의 권위와 세계평화의 건설과 또 장래에 강력의 횡포를 방지하기 위하여 기정 방침을 변하기가 만무하다.

그러면 우리의 통일정부가 수립될 것은 문제도 없는 일이다. 만일 일보를 퇴하여 불행히 소련의 방해로 인하여 북한의 선거만을 실시하지 못할지라도 추후 하시에든지 그 방해가 제거되는 대로 북한이 참가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 의연히 총선거의 방법으로 정부를 수립하여야 한다. 그것은 남북이 단독정부 같이 보일 것이나 좀더 명백히 규정하자면 그것도 법리상으로나 국제관계상으로 보아 통일정부일 것이요 단독정부는 아닐 것이다.

우리 독립을 성취하는 효과에 있어서는 그 정부로 인정받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다. 이승만 박사가 주장하는 정부는 상술한 제2의 경우에 치중한 것뿐이지 결국에 내가 주장하는 정부와 같은 것인데 세인이 그것을 오해하고 단독정부라고 하는 것은 유감이다. 여하튼 한국문제에 대하여 소련이 보이코트하였다 하여 한국 자신이 UN을 보이코트하지 않는 이상 UN이 한국에 대하여 보이코트할 이유는 존재치 아니할 것이다.

二. 전민족 단결 문제

전민족 단결은 시간과 공간의 여하를 불문하고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좌우합작에 실패하였다고 전민족적 단결공작을 포기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금차 한독당의 발론으로 12 정당이 공작을 다시 한 것은 당연한 일이요,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하였든지 기술이 부족하였든지 혹은 노력이 부족하였든지 좌우 양측에서 거대한 부분이 적극적으로 참가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방관하며 심하면 중상까지 하는 듯하다. 그리하여 통일공작은 도리어 역효과를 보고 있는 형편이니 이러한 경우에서는 잠시 그 공작을 보류하고 민중에 호소하는 바이며, 피차간에 원만한 양해를 성립하기 위하여 좀더 노력함이 당연할 것이다. 아무리 조급할지라도 욕속불달(欲速不達)이 되며 도리어 해가 있을 것이다.

http://www.kimkoo.or.kr/03data/sub.asp?pagecode=m03s06t03c&pagecode1=13

[ …… 소측은 여전히 북조선입국을 불허하리라는 불안한 추측하에 ……. ]

유엔한국임시위원단장 胡世澤, 임명소감 피력

게재지명 서울신문, 동아일보

1947년 12월 05일

UN사무총장 트리그브 리는 조선 及 팔레스타인에 각 파견된 UN위원단장을 다음과 같이 임명 발표하였다.

UN事務總長補 胡世澤(中國代表)任 UN朝鮮委員團長
렘프 J. 맨치(美國籍네그로人 UN탁치리사회전문가)
任 UN팔레스타인분할 5개국위원서기장

[레이크썩세스 4일發 AP合同]朝鮮委員團長으로 임명된 胡世澤은 인사임명 발표직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명년 1월중에 조선으로 향발하여 20名 내지 25名의 서기국 멤버를 수립할 터이다.
기보한 바와 같이 조선위원은 조선의 총선거 及 정부수립을 감찰할 것이나 소측은 여전히 북조선입국을 불허하리라는 불안한 추측하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동 위원단으로 선출된 국가중 쏘비에트·우크라이나國은 이미 그 보이코트 의도를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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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감시하 총선을 앞두고 국내 각 정당의 동향 주목

1947년 12월 07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유엔감시하 총선을 앞두고 국내 각 정당의 동향 주목

바야흐로 정국은 UN朝鮮委員會의 來朝가 절박해짐에 따라 각당 각파에서는 이에 대한 대책강구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는데, 특히 右翼측에서는 李承晩과 金九의 총선거에 대한 의견일치를 계기로 그동안 현안중이던 國議와 民代의 합동공작이 급속히 진척되어 우익진영 태세강화를 기도하고 있는 모양이며 한편 중간측은 UN위원회감시하에 실행될 총선거가 남조선에 한할 경우에 대한 태도결정을 방금 연구하고 있는 것같이 보이는 바 如斯한 동향에 대하여 정계 옵서버 모씨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전망하고 있다.

國議와 民代 합동공작

韓獨黨 내지 임정계통에서 영도하고 있는 國議와 李承晩계통의 民代와의 합동공작은 그것이 남조선 현정세하에서는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더욱이 UN위원회감시하에 실행될 총선거가 남조선에 국한될 가능성을 간파하여 우익진영의 총선거에 임할 공동전선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李承晩이 주장하던 남조선단독선거에 대하여 金九는 견해를 달리한 것은 사실이나 이번에 金九가 李承晩의 정견을 지지하게 된 것은 UN결의안에 의한 남북총선거가 소련의 보이코트를 예상할 때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인정한 까닭이 아닌가 하고 보인다.

民聯의 태도

중간정당의 협의체로 결성도중에 있는 民聯은 하부조직공작에 있어서 다소 의견차이가 있는 것같이 보이는데 특히 미구에 실시될 UN결의에 의한 총선거에 임할 태도결정이 자못 주목될 것이다.

즉 남북통일정부를 주장해 오던 民聯으로서는 UN위원회감시하에 감행될 총선거가 소련의 보이코트로 남조선에서만 선거가 실행될 때에는 여하한 태도를 취할 것인지 아직 정식으로 태도를 천명치 않고 있으나 불가피한 이 사태를 긍정하여 합법면을 발견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총선거실행의 공정을 보장하도록 노력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1947.12.11. 김규식

[ …… 중앙정부라고 할지언정 단독정부라는 것은 그 명칭부터 불가 ……. ]

1947.12.14. 동아일보

남조선만 총선거해도
단독정부 아니다

김박사의 견해

입법의원 원장 김규식 박사는 11일 왕방한 기자와 유엔 결의에 의한 남북통일총선거 문제에 관하야 다음과 같은 일문일답을 하였다.

문 유엔위원단이 내한한 후 공정한 남북통일총선거를 보장하는 방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답 유엔 위원단이 와서 모든 일이 진행되기 전에는 하등 예언을 할 수 없으나 설혹 소련은 소위 ‘뽀이코트’를 실행한다 할지라도 나의 희망으로서는 북조선의 우리 동포들도 좌우를 막론하고 다 한인인만치 이번에 우리 한국문제에 있어서는 미소가 여하커나 국제결의에 의하야 남북통일선거에 협동하야 남북통일정부수립에 공동노력하기를 바란다.

문 만일 소련에서 북조선의 총선거를 거절하고 유엔위원단의 입경까지 거부한다면?

답 이런 경우에는 그 위원단이 여하히 할지 예언키 어려우나 혹 남북에 구역을 나누어 구역선거방법을 취할지도 모른다. 남북구역선거를 별개로 혹 별종의 방법으로 할지라도 유엔위원단이 입경하야 선거감시만이라도 허락되어야 할 것이다.

문 그러면 북조선에서 모든 것을 거절하고 남조선에서만 총선거가 시행되어 소위 ‘남조선단독정부’가 수립되는 경우를 예상할 수 있는가

답 여사한 경우에는 나의 보는 바로는 유엔대표단이 직접 처리하기 보다 먼저 유엔 소총회에 보고하여 그 결의를 요할 것이고 설혹 ‘남조선단독정부’가 수립된다고 할지라도 나의 견해로는 그 명칭만은 ‘남조선단독정부’라고 아니할 것이고 한국중앙정부라든지 한국정부라든지 할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 한민족으로서는 근본적으로 남한이니 북한이니 하는 분국이 없었고 미소양군이 점령하면서 생긴말인만치 더욱히 하국하민족을 물론하고 소위 단독정부라는 말은 듣지 못한 것이다. 혹 혁명정부니 임시정부니 하는 말은 적용된 바도 있고 국토의 일부분만을 차지하고 살아도 앞으로의 전국통일을 기도하며 중앙정부라 칭함이 역사적으로나 현금에도 타국에서 쓰는 말이다.

그런즉 제주도 일우만을 차지하고서라도 중앙정부라고 할지언정 단독정부라는 것은 그 명칭부터 불가할 것이다.

1947.12.16. 조선민주당

[ …… 남한은 전체 인구의 7할이 거주하며 북한인구의 35% 이상이 월남 …….

…… 북한인민 일부 불참가는 추후 문제로 돌리고 남한지역내에서 전체적 총선거를 …….. ]

조선민주당, 남한내 전국선거 요망 담화 발표

게재지명 동아일보, 서울신문

1947년 12월 17일

조선민에서는 16일 유엔조선위원단 중국대표 劉馭萬이 제1착으로 내조하게 된 것을 환영하여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

“劉馭萬씨는 조선실정에 정통할 뿐 아니라 한민족의 기대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소련군이 입경을 거부할 경우의 문제를 소총회에 회부케 된다 하드라도 남한은 전체 인구의 7할이 거주하며 북한인구의 35% 이상이 월남한 실정에 비추어 북한인민 일부 불참가는 추후 문제로 돌리고 남한지역내에서 전체적 총선거를 명년 3월 이내에 실시하기를 거족적으로 요청하는 바이다.”

1947.12.19. 한민당

[ …… 남한에서 총선거를 실시하여 한국의 자주정부를 수립하여야 …….

…… 이 한국정부만이 3천만 전한민족을 대표하여 한국의 통치권을 행사 …….

…… 불법점거로 말미암아 침범된 영토주권의 회복을 수행 ……. ]

1947.12.20. 동아일보

소련이 거부하더라도
남한에 중앙정부수립

한민당담화

한민당 선전부에서는 19일 만약 소련의 보이코트로 인하여 남한에서만 총선거가 실시된 결과로 수립된 정부라도 정당한 통일중앙정부가 될 것을 강조하여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

3천만 한인은 다같이 남북통일정부가 수립되기를 절망한다. 그러므로 북한에서도 남한과 동시에 유엔 한국위원단 감시하에 총선거가 실시되도록 협조하여 주기를 기대하여 마지 않는다.

그러나 소련등 6개국이 이미 유엔독립안의 보이콭을 선언하고 우크라이나가 위원단의 수락을 거부한 것만큼 남북통일총선거 실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만일 이 경우에는 남한에서 총선거를 실시하여 한국의 자주정부를 수립하여야 한다.

국제공약과 세계회의에 의거한 최후적 방법을 채용하여 수립된 이 한국정부는 정당한 통일중앙정부로 세계 만방이 승인할 것이고 중경에 있든 중국정부가 중앙정부이든 것과 같이 이 한국정부만이 3천만 전한민족을 대표하여 한국의 통치권을 행사할 것이다.

그리고 이 한국정부는 유엔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세계공의에 의하여 불법점거로 말미암아 침범된 영토주권의 회복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이승만, 김구 등 정계요인 연두사 발표

게재지명 조선일보, 동아일보
1948년 01월 01일

▷李承晩

“1948년 新正을 맞이하여 동포에게 前例件으로 축하를 올리느니보다 실로 행복스러운 新年이 되기를 위하여 일반 동포에게 충고하고자 하는 것은 것은 우리가 사실상 국권을 세워 놓아야 獨立問題와 민생 塗炭問題를 次第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므로,

나의 주장은 일반동포가 이 기회를 잃지말고 우리 힘으로 다 만들어 놓은 정권을 회복하기로만 결심하여 남의 조처만 기다리지 말고 우리의 民族自決主義로 기초를 하루바삐 세워 우리 일을 우리가 하게 되어야만 남이 우리를 도울 수도 있고 방해하려는 국가나 개인이 있을 지라도 그 손해를 받지 않고 3천만이 다 자유로 살 수 있게 되어 萬年 幸福의 국운을 누릴 것이니,

지금에 있어서 南北을 대표한 정부 수립을 早一日 성취하기로 결심 奮鬪하여, 오는 이 해는 우리 전민족에게 독립을 완성하여 만세에 기념할 해가 되기를 축하합니다.”

▷金九

“우리에게 一條의 서광이 있으니 이는 UN 위원단의 내한이다. 우리는 잠시라도 모든 비애를 잊고 새해에 새손님을 기쁘게 맞이하는 동시 최선을 다하여 그들과 공동 노력할 것이며 수시로 우리의 정당한 주장을 발표하므로서 기어히 우리의 염원을 관철하도록 하자.

따라서 우리가 기대하는 자주독립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總選擧가 실시된다면 우리는 귀중한 一票를 유효하게 던져야 한다. 우리는 마땅히 新年劈頭에 있어서 과오를 청산하고 먼저 우리 민족이 단결하여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 것이며 단결된 역량으로써 UN 위원단도 맞이하고 그들의 도움도 청하자.”

▷金奎植

“新年을 맞이함에 있어서 허다한 感想談은 略하고 다만 우리가 日舊月深으로 맺은 희망조건만을 말한다. 즉 신년에는 最速한 기간내에 우리의 완전한 독립도 진실한 자유도 찾고 경제적 死活問題도 생산력이 속히 발전되어 해결되며, 사회적 문화적으로 일체가 회생되기를 간곡히 빌며 우리 민족 전체가 합동 노력하여 더욱 적극 노력하기를 바란다.”

▷하지中將

“1948년 조선국민의 자유의사 발표에 의하여 민주주의적 통일국가 재건을 볼 수 있는 해가 되기를 본관은 진심으로 염원합니다. 위대한 국가를 유지하는데 필수조건인 전국민의 완전한 통일 및 경제와 교육의 발전이 있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딘軍政長官

“이 해는 조선역사상 가장 의미심장한 해입니다. 우리는 다같이 통일 독립국가가 수립되기를 염원하는 바입니다. 이미 계획된 바 UN 감시하에서 실시될 총선거로 말미암아 우리의 희망은 근본적으로 성취될 것입니다. 실로 1948년은 통일 독립국가가 건설 완수되는 진정하고 행복스러운 해가 되기를 본관은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입니다. 끝으로 조선국민 제위에게 평화와 행복과 번영이 있기를 기원하여 마지아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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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性洙

“憂國憂民之士로 과거 丁亥 1년간을 회고하여 볼 때에 통탄 통분치 않을 사람이 누구이랴! 우리 3천만 민족의 熱火 같은 소망인 독립 통일조선의 민족 대업을 완수하지 못한 것은 且置하고라도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交通手段과 산업부흥이 날이 갈수록 악화하여 우리 민족 생활은 문자 그대로 最惡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소위 해방된 이 疆土에 이와 같은 무자비하고 맹혹한 악조건이 구현될 것을 예기치 않았던 만큼 우리의 생활은 일층 深大한 바가 있다. 雪上加霜으로 獨立戰取의 민족적 염원을 달성키 위하여 모든 사리사욕을 초월해서 민족이 가진 總力量을 동원 집결하여야 할 중대한 역사적 단계에 직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국내 정계는 분열과 대립이 심각한 바 있어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실로 통탄을 不禁케 하는 바가 있다. 특히 그릇된 政治理念 밑에서 동족상잔의 참극을 빚어내어 外로는 문화민족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하고 內로는 건국사업을 달성하는데 없어서 안될 有爲有能한 人物을 잃게 된 것은 실로 痛天哭地하여도 부족함이 있다.

戊子年을 맞게 되매 우리는 오직 獨立戰取에 총력집중 자세를 갖추지 않아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삼천만의 소망은 일曰 독립이오 이曰 독립이다. 이 민족적 소망과 오천년래의 숭고한 민족정신으로서 독립전취의 일대 민족운동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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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1.9. 유엔 위원단 도착

[ …… 백여만명이 …….

….. 서울과 김포간 50리 연도에 도렬하여 목이 마르도록 만세를 고창하며 그들을 환영 …….. ]

[ …… 태극기를 가가호호에 높이 올리고 …….. ]

1948.1.9. 동아일보

귀빈 맞는 환호의 장안
붕정 만리 거쳐온
유엔단의 씩씩한 면모

이박사 등 정계요인 일행과 감격의 악수

‘위원단 여러분! 이 칩고 치운 날 그 머나먼 길에 수고하섯소이다…..’

이땅 이 민족은 그대들을 이렇게 진정으로 환영하는 바이다. 위원단이 오는 이날 김포비행장에는 백발이 성성한 이승만 박사 김성수 씨를 비롯한 국내 대표 12씨와 딘 소장 부라운 소장 등 미군 대표들이 거세인 바람에 옷깃을 에이며 일행이 도착하기 오래전부터 기대리고 있다.

그리고 비행장 밖 저멀리 가두에는 각정당 청년단체 학생단체 그리고 일반이 각기 태극기와 소속 단체의 기빨을 휘날리며 도열을 짓고 있다.

하오 5시 50분! 저물어가는 남쪽 하늘에 위원단 일행을 실은 4발동기 은익이 반짝일 떄 김포비행장 일대는 마침내 ‘위원단 만세!’ ‘조선완전자주독립만세’의 고함 소리로 진감한다. 이리하여 위원단 일행을 실은 비행기는 비행장 상공을 천천히 한바퀴 우회하고 마침내 동 55분 그 육중한 몸체를 미끄러지듯 착륙하였다.

이어 비행기의 문이 열리자 호(호세택) 박사를 비롯한 대표수행원 등 34명은 원로에 피로의 색도 보이지 않고 차레차레로 이 땅에 제1보를 디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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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거리 환영 일색

김포 비행장에 착륙한 각국 대표는 ‘유엔’ 기빨을 날리며 김포로부터 서울로 미주둔군 제24군에서 보낸 자동차로 국제 수도 양 호텔로 향하여 오는 도중 각정당 사회단체 청년단체 학생들의 진심으로 우러난 만세와 환호로 이 땅의 성대한 환영에 감격하였거니와 160만 서울 시민은 진정으로 그들 위원단을 마지하는 성의의 표현으로 태극기를 가가호호에 높이 올리고 그들의 진실한 활동과 이땅 사람들의 염원이 그대로 달성될 것을 3천만 인민들의 기대 자못 큰 바가 있다.

연도에 도열한
백여만 군중

감격과 흥분에 열광

3천만 조선국민이 얼마나 자기 나라의 국권회복을 열망하고 있는가? 국제연합 조선위원단 6개국 대표가 우리 조선을 밟는 날인 1월 8일 전국환영준비위원회의 지령으로 서울과 김포 주민 백여만명이 추위 영하 10여도를 넘는 혹한에도 불구하고 서울과 김포간 50리 연도에 도렬하여 목이 마르도록 만세를 고창하며 그들을 환영하는 진실하고 성대한 광경은 이?사람은 물론 이 나라의 새로운 손님을 맞어드리는 감격과 흥분을 여실히 표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에 감탄한 각국 대표들이 조선 사람들의 피 끓는 요망과 염원을 달성하기 위하여 가진 노력을 경주할 것으로 기대되거니와 조선의 우수한 정당과 사회 단체의 모든 정성과 노력을 기우려 국권을 회복하고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복리를 위하여 공헌하려는 열의 하늘에 사못처 기필코 독립을 완성하려는 이땅 사람들의 정성을 여실히 반영하였다.

세계 평화의 상징
우뚝 솟은 유엔 환영탑

‘세계의 평화는 조선의 독립으로부터’라는 표어를 내어건 국제연합조선위원단 전국환영준비위원회의 환영탑은 서울 시내 세종로 네거리와 시청앞에 다채 웅장하게 건설되어 오고 가는 시민들로 하여금 국제연합위원단에 협력하여 국권을 회복할 용기와 감격을 다시금 새롭게 한다.

이제 고색이 창연한 덕수궁으로 드나들 8개국 대표들도 이 땅 사람들의 염원과 부르지즘을 단적으로 표시한 환영탑의 표어를 마음 깊이 새기어 조선독립의 완수에 각자의 노력과 창의를 다할것이니 이 아니 반가운 일일 것이랴!

유엔조선임위에 요망하는 정당 단체의 견해 발표

동아일보 1948년 01월 11일

유엔조선임위에 요망하는 정당 단체의 견해 발표

▷韓民黨

“우리는 유엔委員團의 안착을 기뻐하여 그 前途를 축복한다. 독립조선 건설이 그들의 사명인즉 蘇聯과의 교섭에 日字를 많이 허비하지 말고 신속히 총선거를 실시하여 정식정부 수립에 노력하여 주기를 우리는 동 위원단에 갈망하는 바이며 3월말 이내라는 총선거 기한을 엄수하기를 요청한다.

해방후 이미 4個星霜 우리 동포는 얼마나 초조하였던지 연합국의 호의에는 신뢰하면서도 불안에 싸여 있었던 것은 掩蔽치 못할 사실이었다. 이번에는 遷延함이 없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북에서 선거에 응하지 아니할 시는 남에서만이라도 선거를 행하여 정식정부를 조직하여야 할 것은 조선민족 전체의 요청이고 事理上에도 당연한 일이니 委員團에서 신속 과감한 행동을 취하여 주기를 우리는 요구한다.”

▷民主議員

“3천만 동포와 함께 우리는 유엔위원단의 안착을 기뻐하여 그 前途를 축복한다. 소련의 교섭에 많은 일자를 허비치 말고 조속히 총선거를 실시하여 하루라도 더 속히 우리 정부가 수립되도록 동 위원단이 노력하여 주기를 우리는 갈망하는 바이다.
北에서 선거에 應치 않는 경우에는 南에서만이라도 총선거를 실시하여 정식 정부를 수립하는 것은 事理上 당연한 일이니 그때 그 절차에 관하여서도 敏速히 활동하여 주기를 우리는 동 위원단에 요청한다.”

▷獨促靑年團

“금반 남북총선거를 실시하여 한국의 자주독립을 협조하기 위하여 來朝한 유엔한국위원단을 충심으로 환영하는 동시에 그 성공을 바라는 바이다. 그러나 유엔총회 석상에서 42대 0으로 통과된 한국독립을 위한 총선거안을 보이코트한 소련의 의도를 窺知할 수 있는 바이니 과연 유엔한국위원이 북한에까지 원활한 선거 실시를 하게 될 수 있을는지 우려하지 아니할 수 없다. 불행히 그런 경우에는 부득이 남한만이라도 총선거를 급속 실시하여 외국의 간섭없는 독립정부를 수립하도록 하여 만방의 승인을 얻도록 선처하여 3천만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를 유엔위원 諸氏께 절망하는 바이다.”

▷勤勞黨

“조선 독립문제에 대한 유엔결정은 美蘇 협조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우리의 민족자결권을 무시하는 것으로 이는 조국의 통일 독립을 지연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통일의 유일한 捷徑은 外力 간섭없는 남북통일 총선거를 실시하므로서만 가능한 일이다.”

▷南勞黨

“유엔 결정은 조국의 민주독립을 복잡 遲延化시키고 유엔탁치의 길로 유도하는 것을 규정하기 때문에 우리는 동 결정을 반대한다. 그러므로 美蘇 兩軍은 즉시 撤兵하여 우리 민족에게 외국의 간섭없이 조국의 운명을 자유로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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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1.14.

유엔조선임위환영 전국대회 개최

서울신문,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1948년 01월 15일

유엔조선임위환영 전국대회 개최

(略)개회시간이 정각보다 늦어 3시20분 대회위원장 조병옥의 안내로 위원단 사무총장 胡世澤을 선두로 인도대표 프랑스대표 각 위원들이 UN의 휘장을 가슴에 붙이고 단상에 나타나자 아침부터 회자이 터져나갈듯이 모여들어 감격과 흥분으로 기다리던 수십만 군중의 박수와 환호소리로 회장이 떠나갈듯 이에 각 대표들은 감격에 모자와 손을 휘두르며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반드시 사명을 달성하겠다는 표정을 표해 주었다.

이 감격된 장면이 지난 후 3시15분 전국환영대회는 시작되었다. 전원이 모자를 벗은 후 대기하고 있는 각 악대의 주악리에 애국가 봉창이 울리고 난 후 개회사를 吳世昌을 대신하여 金活蘭이 대독하고 이어서 대회 위원장 趙炳玉의 간곡한 환영사 계속하여 朴惠連 외 8명의 소녀로부터 각 대표들에게 환영과 감사의 꽃다발을 올리고 대학 중학생 연합합창단 玄濟明지휘로 환영가의 합창이 있었고 이에 위원단을 대표하여 인도대표 메논으로부터 답사(별항 참조)를 李卯黙이 통역한 후 이날 단성 사무친 환영대회는 4시40분 성대히 끝마치었다.

(서울신문, 1948. 1. 15;경향신문, 1948. 1. 15;동아일보, 1948. 1. 15;조선일보, 1948. 1. 15)

▷開會辭 吳世昌(金活蘭 代讀)

우리는 큰 기쁨과 소망을 품고 오늘 이 역사적 환영회를 여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 귀한 손님들은 한 나라이나 또 여러 나라의 각각 대표가 아니라 국제연합회의 대표이시기에 우리 나라 정치 역사에 처음 맞이하는 손님이십니다. 우리를 도와 총선거를 실시하고 이미 두 해 반이나 늦어진 우리의 정부를 세우고 지금 점령하고 있는 두 해방군대가 물러가게 할 위대한 사명을 지고 오신 정의와 평화의 사도이십니다.

이 귀한 손님인 거룩한 사도들을 우리 3천만은 한자리에 모여 환영하고 싶어 추운 날인데도 이 운동장으로 자리를 정하였읍니다. 귀빈 여러분은 기온의 찬 것을 생각지 마시고 우리 마음의 열을 체감하시면서 이 정에 넘치는 환영을 받아주세요.

오늘날 불행히 강토의 남북이 갈라진 쓰라린 현실을 초월해서 여기 모인 우리 대중의 마음에는 오직 한 나라가 있을 뿐입니다. 남북이니 좌우이니 중간이니 하는 모든 모략적 구별을 초월해서 조국권권 회복에 한 덩이가 된다는 이 사실을 여기 모인 대중은 3천만을 대표해서 여러분께 증언하는 바입니다. 일본의 제국주의도 꺾지 못한 그 조선적인 무기를 가진 우리는 오늘에도 우리를 방해하는 모든 악의 세력을 대항하고 우리와 협조하는 義의 세력과 합류하고 있읍니다. 여기에는 정결하고 의로운 애국의 피가 끓는 전국민을 대표한 군중이 모였읍니다. 거룩한 사도 여러분이 성취시켜 주실 독립을 위해서 우리느는 한데 뭉쳤고 여러분에게 향한 감격이 넘쳐서 이 환영회를 기쁨과 희망으로 여러분에게 드리는 바입니다.

(경향신문, 1948. 1. 15)

▷趙위원장 歡迎辭

동 대회 석상에서 위원장 조병옥은 다음과 같은 환영사를 낭독하였다.

회장이하 의장과 위대하신 국제연합조선위원 各位 내빈제위와 동포여러분 그리고 만장의 신사 숙녀제위 우리의 소박하지만 애국적인 조선사람들은 오늘 기쁨과 희망과 감격을 가지고 여러분 UN朝鮮委員團의 위대하신 위원제위 앞에 모이게 되었읍니다.

그이들은 여러분 앞에 충심의 환영의 뜻을 표하고자 하고 있으며 그리고 여러분은 세계 新질서에 기본한 제국주의와 국제평화의 이념을 실현할려고 노력하고 있는 그 존엄한 기구 UN을 대표하고 계신 우리의 벗 우리의 代辯者로서 반겨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몸소 위원으로서 국제연합총회에서 우리 조선독립을 위하여 용감히 싸워 주신 그 이해와 經綸에 대하여 우리는 삼가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貴위원단에 부과된 사명은 가장 신성하고도 긴급한 것이며 諸位는 이곳 조선에서 자유스럽고 독립된 민주주의 조선정부의 수립을 보장할 총선거를 감시하시기로 되었읍니다. 우리는 제위께서 UN에서 결정한 그 기한내에 총선거가 시행될 수 있도록 그 사명을 급속도로 진척시켜 주실 것을 기대하는 바입니다. 우리 조선국민은 정치적으로 굶주리고 목마르고 있으며 국가의 독립과 국민의 의사로 수립될 자유 민주정부를 갈망하고 있읍니다. 우리는 이 이상 더 시간을 허비하여 보낼 수가 없읍니다. 지금 우리 조선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파멸의 지경에 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해방시켜준 연합국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해방의 꽃은 만발하였건만 그것은 아직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읍니다. 우리가 실망적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우리 나라가 그 알 수 없는 38도선이라는 것에 의하여 양분될 운명에 놓였다는 것입니다.

이 치명적인 분할은 정치적 半身不隨髓 경제적 파탄을 초래하였으며 더구나 그것은 민족적인 전통과 문화를 가진 이 땅 조선에다가 전연 이질적인 두 세계를 창설하였읍니다. 즉 북으로 북조선에서는 소수자의 독재를 기초로 한 공산주의제도가 확립되어가고 있으며 이곳 남조선에서는 우리 자신의 민족적 保持함으로써 진정한 민주주의를 건설할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령 수박으로 비유하여보건대) 조선의 수박은 괴상하고 부자연한 것으로 되고 말았읍니다. 즉 수박의 北쪽은 껍질까지 빨개지고 말았으니 이것은 조물주 자신조차 놀라운 느낌없이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민족적인 비극이겠읍니까.

통일적인 독립조선의 건설이라는 것이 超人의 일과 같은 것입니다. 나는 리챠드·기프링이 東은 東 西는 西 이 두 세계는 결코 쌍둥이와 같이 같은 것이 될 수 없다고 한데 대하여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북은 북 남은 남이 둘을 결코 쌍둥이와 같이 같은 것이 될 수 없다고 굳게 믿습니다. 우리는 통일을 원합니다. 그러나 그 통일은 국가 천년의 복리를 보장할 수 있는 진정한 통일을 가져오게 할려면 먼저 다음과 같은 조건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되겠으니 즉 첫째로는 조선의 국가독립에 대한 성의와 실행에 있어서 양점령군이 공통되어야 할 것이오 둘째로는 북조선의 기성 사실화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제조건이 해방 이전의 상태로 복구되어야 할 것이며 끝으로 조선의 전국민은 각자가 분별있는 자유투표를 함으로써 정부의 형태를 선택할 우리의 천부의 권리를 행사치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당면한 정세를 匡球하기 위하여서는 조건의 완수에 대하여 너무 형식적인 고집만을 부린다는 것은 오히려 유해한 일이 될 것입니다. 첫째 조목과 둘째 조목은 서로 긴밀히 연결된 것인데 이것은 지금 도저히 이루어질 것으로 예기되지는 않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그것은 구라파와 아세아에 상호관련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국제정세에 근본적인 변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 기대할 수 없는 것인 까닭입니다. 우리 조선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는 이미 2년이나 참을성있게 고대하고 노력을 하여 왔지만 필경 소련은 미소공위에 또는 UN총회에 있어 사보타지의 보이코트로서 우리의 소망은 수포에 돌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 문제의 해결은 이 이상 더 지연시킬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당장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바 방도와 당장 우리가 처하고 있는 바 현실로서 우리의 국가적 정치운명을 개척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앞으로 더 나은 전망이 보이지 않는 경우에 우리는 우선 면적 인구로 보아 우월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南朝鮮만이라도 직시 총선거를 시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현실을 현실 그대로 살려볼 적에 당연히 요구되는 것입니다.

조선은 지금 自由냐 奴隷냐 獨裁主義냐 民主主義냐 共産主義냐 民族主義냐 生이냐 죽음이냐 하는 십자로에 놓여 있읍니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반대하여 左的인 것이나 右的인 것이나 여하한 것을 막론하고 독재주의를 반대합니다. 그래서 우리 조선국민은 인류의 자유와 世界의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 우리의 적을 撲滅하기 위하여 세계의 자주세력에 합류하기로 하였습니다. 조선문제는 공산주의냐 민주주의냐 하는 세계문제의 현실적으로 구체적인 例證입니다. 마치 전인류가 삶이냐 죽음이냐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것과 같이 우리는 자유냐 죽음이냐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읍니다. 만일 자유를 갖지 못할진대 우리는 차라리 죽음을 택할 것입니다.

현명하신 委員諸位 아마 여러분께서는 그 임무를 이행하시는 중에 어떠한 실망 또는 어떠한 낙망을 경험하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諸位의 직접적 관찰과 개인적 연구로서 극복하여 주십시오. 성의는 있으나 皮相的인 외국의 친구들 중에는 흔히 우리를 통일하고 협조할 능력이 없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도 우리가 이 점에 있어서 부족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國民性에 本有한 결함에 인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日政下에서 40년 동안이나 낱개의 분산된 개인으로서 수동으로만 살아왔고 전민족적인 규모의 정치적 經國을 가질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에 인한 것입니다.

더구나 오늘날 분열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우리는 남조선에서 막연한 국제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하여 싸워왔습니다. 南朝鮮은 北朝鮮(政府)에 의하여 조종되고 南朝鮮에 있는 그 一黨에 의하여 수행된 파괴적 선전과 共産主義와 民主主義 사이에 타합과 합작이 있을 수 있겠읍니까

또 혹시 제위는 UN을 공격하고 諸位의 사업에 容駭하는 괴이하고 시끄러운 곡조의 정치음악을 들으실런지도 모르겠읍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그것은 참다운 조선의 소리가 아니오 쉬티코프大將과 몰로토프를 변호하는 일부 소수분자의 소리입니다. 우리 국민의 압도적 대다수는 전적으로 여러분과 원조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을 협조할 것입니다. 왜그러냐 하면 그들은 우리 자신의 정부의 수립만이 이 분열과 혼돈을 처리하는 유일의 방법이라는 것을 믿고 있는 까닭입니다. 정부와 법률과 교육은 민족의 통일과 정치적 질서를 가져오는 적극적 요소입니다.

끝으로 우리 동포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운명의 暗黑面만을 보지말고 明朗面도 생각을 하십시오. 세계 자체는 대체로 보아 좋은 쪽으로 향하여 진전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역시 미약하지만 확실히 우리 국가독립의 최후 결승점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에 46이나 되는 우호적인 민주국가의 성실한 지지를 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 나라가 문명국가의 가족의 일원으로 參列하게 될 날은 멀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한층 애국심있게 되어 가지고 우리의 독립을 달성할 수 있도록 또 세계평화와 그 殿堂을 건설하는 데 無私하게 기여하도록 새로이 세례를 받읍시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우리를 도와주려는 UN위원단을 전적으로 지지합시다.

우리의 UN과 우리의 朝鮮에 영원한 생명을 하락하여 주시옵고 그 위원들의 조선 체류가 즐겁게 되고 많은 결실이 있도록 그들에게 건강과 洞察과 용기를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신명에게 간절히 축원하옵니다.

(서울신문, 1948. 1. 15;경향신문, 1948. 1. 15;동아일보, 1948. 1. 15;조선일보, 1948. 1. 15)

▷臨時議員 印대표 메논答辭

이번 본인이 유엔조선위원단 임시의장으로 추대된 것은 큰 영광입니다. 그러나 그 반면 큰 부담이 있는 것이다. 본 위원단의 다른 동료는 구경하고 혹은 비판하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연설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성대한 모임과 찬사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깊이 감사를 드린다. 본 위원단이 올 적에 가두에서 보여준 환영에도 아울러 감사를 드린다.

본단이 부과된 과업을 다하자면 여러분과 자주 이야기해야 한다. 이리하여 이 위원단의 결의도 알아줄 수 있다. 본 위원단이 작성하는 안에 다 찬성하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당이든간에 공정하다는 것을 알아주어야 할 것이다.

조선은 아시아의 딴 나라요 따라서 엄연히 독립국가로 있었으며 20세기에 와서 독립을 상실하였었다. 그러나 여러분은 국가의 독립을 오매에도 잊지 않고 있어 1919년에 그 염원이 폭발되었으며 그 후 중국 혹은 딴 곳으로 가서 독립을 위하여 힘써 왔던 것이다.

현재 남부에 많은 지도자가 있는데 그들은 모두 독립을 위하여 고생하고 분투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분과 같이 공동의 목표는 독립인 것이다. 우선 통일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고 이것이 없다면 또한 놀림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독립과 같이 중한 것이 또하나 있는데 이것은 통일이다. 남북이 갈라 있어 나로서는 쓰라림을 크게 느끼는 바이다. 우리는 전 인구의 5분지 1을 가진 땅이 딴 국가로 갈려나가게 된 것이다. 인도인으로서 분열을 주장하는 사람은 그 이유를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사람은 정치 경제문화 모든 것이 단일적으로 필연코 하나가 되어야 할 조선이다. 조선에 있어서 남이니 북이니 하는 것은 찬송가의 일절과도 같이 하느님이 합친 나라를 사람의 힘으로 헤칠 수는 도저히 없다는 것으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38도선은 사소한 군사적 조치로 큰 필요가 없던 것이다. 현재에 와서는 통일에 큰 장애가 되어 있으나 조선과 우방국이 결심만 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의장이 되어 있는 본 위원단은 목표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우리는 극히 공평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위원단에 참가한 각 국가를 소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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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이것을 다 체험하고 있으므로 이것을 거울삼아 스스로 갈 길을 취해야 할 것이다. 이것을 꿈과 환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것이 힘이 되는 것이다. 인도도 이러한 꿈과 환상을 가지고 영국사람의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독립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기적이라고 부른다. 이 기적이 멀지않아 조선에 있을 것이다. 이 기적을 조선에 가져오기를 약속하노니 여러분도 분투 노력하여 하루빨리 독립을 하여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 1948. 1. 15;경향신문, 1948. 1. 15;조선일보, 1948. 1. 15;동아일보, 1948. 1. 15)

뉴욕타임즈, 유엔조선임위의 북한방문요청에 대해 논평

게재지명 조선일보, 동아일보

1948년 01월 20일

뉴욕타임즈紙는 18일의 사설에서 UN朝鮮委員團의 朝鮮 蘇聯占領地帶의 儀禮訪問을 허가하라고 요청한 데 관하여 다음과 같이 論하였다.

46대 0(소련블록은 棄權)의 압도적 표결로 임명된 위원단이 모자를 벗어 손에 들고 이 세계기구인 UN의 一加入國에 대하여 거의 전원일치인 사명을 실행할 허가를 요청한다는 것은 창피스러운 일이다. 蘇聯이 이 위원단을 보이코트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을 여하히 변명할 수 있을런지는 예측하지 곤란하다.

吾人은 위원단이 강경히 소련회답을 독촉하고 레이크썩세스에 있는 중간총회의 완전한 지지를 받기를 희망한다. 朝鮮은 소국이나 이 나라에서 제시된 문제는 중대한 것이다. 이는 이 一國의 일방적 결정에 의하여 봉쇄될 것이냐 하는 것이다. 1948년도의 가장 중요한 결정이 될 수 있는 문제가 試驗臺에 오르고 있다. [뉴욕19일발 UP 朝鮮]

소련의 북조선입경거부에 대한 각계 견해(1)

게재지명 경향신문

게재일자 1948년 01월 25일

▷金九 談:우리 3천만의 염원은 南北統一 총선거이다. 그러나 蘇側의 거부가 있었다면 이는 최대의 불행이다. 차후문제에 대해서는 지금 言及하기를 삼가는 바이다.

▷韓獨黨

蘇側이 北朝鮮 入境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부득이 UN감시하에 수립되는 政府가 中央政府라면 38이남에 한하여 실시되는 선거라도 참가할 용의가 있다.

▷國民議會

南北統一選擧가 불가능함은 극히 유감이다. 남한만에 국한된 선거이라도 중앙정부로 세계가 인정하는 한 이에 협력할 수밖에 없다.

▷民獨黨

UN委員團 입국거부의 말이 사실이라면 유감으로 생각한다. 소련으로서 재고하기를 바란다.

▷民聯

소련의 보이코트는 예상하였던 것이며 별로 驚愕할 것이 없다. UN朝委 각국 대표들은 제1·제2·제3단계의 비책이 있을 것이니 앞으로 소련과의 외교교섭에 있어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므로 UN朝委 前途에 대하여 속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安浩相

祖國獨立의 戰取에 있는 우리는 항상 良心的과 理論的과 또 政治的으로 생각하며 투쟁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우리 3천만의 공통된 至上目的은 國土의 統一과 主權의 독립이다. 이 통일 獨立國家라는 이 목적은 변할 수 없고 또 변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목적을 세우고 난 뒤에 다시 그 목적 달성의 길과 方法을 찾아내며 또 그 방법에 따라 실제로 행동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런데 오늘날 各人 各黨이 말하고 문제하는 것은 그 方法論이며 또 그들의 방법이 서로 다름으로 인하여 우리의 독립노선이 혼란케 된다. 우리는 이들 方法論을 냉정히 비판해서 우리의 바른 獨立路線을 찾아가지 아니하면 아니될 것이다.

1. 美蘇 妥協과 朝鮮獨立

小數의 政客들은 오직 美蘇間 妥協으로서만 될 수 있다 한다. 물론 美蘇가 朝鮮獨立을 위하여 타협한다면 조선독립은 가장 쉽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흐름과 현금의 정치적 현실로서는 美蘇의 타협으로서보다 오히려 우리 民族의 투쟁으로써 獨立戰取가 훨씬 쉽고도 확실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美蘇妥協이 반드시 우리 獨立을 완성시킨다고 믿어서는 아니된다. 왜 그러냐 하면 그들은 자기들의 이해관계로 타협할 수 있을런지 모르며 또 美蘇의 타협으로서 軍政을 연장하여 우리 독립을 방해할는지도 모르는 까닭이다. 이것은 그 소위 얄타협정을 보라 美蘇의 타협으로서 朝鮮을 分割占領한 것이 아닌가? 이러한 역사적 과정과 정치적 현실을 무시하고 오직 美蘇의 타협으로만 조선독립이 된다는 것은 空想主義와 奴隷心理가 아니라면 일종의 정치적 모략임에 틀림이 없다.

2. 蘇聯의 總選擧 拒否와 우리의 態度

남북 통일선거는 우리의 절대적 요구다. 그러나 이때까지의 消息에 의하면 남북 총선거를 위하여 온 UN朝委의 北朝鮮 入境을 소련이 거부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일부 인사들은 말하기를 이 소련의 거부로 인하여 南北統一選擧가 불가능함으로써 미국 점령지에서만으로 총선거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여기서 물어볼 것은 만일 소련이 선거를 승인하고 美國이 선거를 거부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답은 만일 蘇聯의 選擧拒否로 인하여 선거를 포기하려는 者들의 論法에 따라 역시 선거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소련이 거부하다가 만일 1년, 2년 뒤에 蘇聯이 남북선거를 주장한다면 그때는 미국이 또한 그 선거를 거부할지도 모른다. 왜 그러냐 하면 소련이 南北選擧를 주장할 그때에 조선 전국은 벌써 상당하게 蘇聯化가 된 까닭이다.

미소 양국 중 한 나라가 우리의 총선거를 거부한다고 우리가 選擧를 不可하다 함은 우리의 독립의 妨害者에 따라가 우리의 獨立을 妨害하는 것이다. 우리의 美蘇의 一國만이 아니라 兩國이 다같이 우리의 총선거를 거부할지라도 우리는 결사코 선거를 실행하여 우리의 독립정부를 만들 것이며, 또 만일 美蘇 兩國으로부터 우리의 祖國 전체를 동시에 독립시키지 못하거든 美軍이 점령한 이 지구에서나마 선거하여 우리의 祖國을 해방시켜야만 한다. 전체가 동시에 독립됨은 그보다 더 큰 慶事가 없지만 만일 전체가 동시에 못되거든 부분적 독립으로 戰取해야 할 것이다. 全體가 안 된다고 부분적 獨立까지 던져버린다면 祖國의 완전한 전체 독립은 영원한 꿈일 것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美蘇 兩軍 占領地에서 동시에 총선거가 불가능하다 해서 美軍占領地인 남조선 總選擧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불순한 동기와 黨派的 감정이 아니면 愚昧한 政見의 소유자임에 틀림없다.

3. UN朝委는 朝鮮의 공정한 총선거로써 통일 獨立政府를 위하여 왔다. 다시말하면 그들은 우리에게 독립을 주려고 온 것이 아니라 독립하려는 우리를 절대로 도와주려 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獨立戰取方法을 제시하는 동시에 또 이 방법의 실천에 절대적 원조를 요청해야 한다. 그 방법은 곧 남북 兩地의 總選擧요 또 만일 소련이 不應이면 南朝鮮地域의 총선거로써 中央政府 수립이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前日까지 인구가 38이남엔 2천만 이북엔 1천만이던 것이 현재엔 이북에서 약 350만이 南下하였다. 그러므로 전 인구의 4분의 3은 이남 4분의 1은 이북이요 또 이북인구 전체와 南下한 人口比例로 본다면 이북엔 3분의 2 이남엔 3분의 1이 있다. 그러면 만일 人口의 4분의 1이 總選에 참가 못한다면 진의를 존중하여서 總選擧가 타당치 않다면 論法에 따라서 北朝鮮人口 3분의 1이 총선거를 절대 지지하는 의견을 존중해서 3분지 2의 총선거반대 의견을 도리어 반대라고 무시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 論理的으로나 法理的으로나 38이남의 總選擧로써 세운 政府가 統一中央政府가 될 수 있다. 더욱이나 정치적으로 본다면 이 南北總選擧를 거부하는 이상 우리는 부득이 朝委를 세계의 협조를 얻어 우리의 總選擧로써 독립정부의 수립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최선의 獨立의 길이요 방법이다.

3천만동포여! 黨派心과 감정과 모략을 버리고 오로지 人間的 本心과 민족적 양심으로써 현실의 정치를 보고 실천하자! 우리는 어디서나 총선거로서 獨立政府를 세우자! 만일 소련이 반대하거든 南朝鮮에다 미국이 반대하거든 다시 鬱陵島나 濟州道라도 아니 智異山 꼭대기나 백두산 꼭대기라도 세계의 대표인 UN朝委의 협력밑에서 독립 정부를 세우자! 이 시기를 놓치면 우리의 조국과 민족은 異民族의 영원한 奴隷만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값비싼 피를 흘려버려서라도 자손을 잘 되게 하려는데 어찌하여 우리의 값싼 감정을 흘려버려서 子孫과 민족을 살리지 못하겠는가?

경향신문 1948년 01월 25일

제목 소련의 북조선입경거부에 대한 각계 견해(2)

게재지명 서울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게재일자 1948년 01월 27일

▷李博士 談:UN委員團의 북한 越境을 蘇聯서 거부하였다는 것은 예상한 바로 이제 새삼스럽게 놀랄게 없다. 蘇聯은 세계의 公論을 중요시하여 UN 결의를 履行하여야 할 것인데 이번 이런 태도로 나왔다는 것은 세계평화에도 관계될 것이며 소련 자체도 이롭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韓國問題에 있어 과거의 美蘇共委나 이번 UN委員團이나 韓人은 干涉 못하게 하고 제 마음대로 협의를 하여 왔으나 이제부터는 韓人이 권리를 갖고 앞잡이가 되며 UN이 도웁게 하여야 될 것이다. 손님이 남의 집에 들어가 일을 할려면 主人을 앞에 내세우고 일을 하여야 잘 되는게 아닌가?

▷金性洙 談:우리는 남북을 통한 總選擧를 시급히 실시하기를 갈망하여 왔는데 이번과 같은 소련의 거부로 남북총선거를 실시 못한다면 남조선이라도 총선거를 단행하여야 될 것이며 이 總選擧로 소집되는 國會는 43대 0이란 UN決意에 쫓은 것인만큼 남조선 국회가 아니라 中央國會이다. 그리고 우리 黨으로서는 이미 1946년9월 黨 1주년기념식 때 朝鮮獨立問題를 四相會議나 또는 UN에 상정하기를 요청한다는 결의를 통과시키고 4대국과 UN에 메시지를 보낸 일이 있으므로 3월31일 이전에 실행될 UN 감시하의 總選擧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

▷金博士 談:아직 그 通告原文을 알 수 없고 또 들어오는 말이 구구한 까닭에 이에 대하여 무어라 말할 수 없다.

▷洪命熹 談:朝鮮委員團에 대한 蘇聯側 보이코트는 예기못하였던 사실은 아니나 우리 朝鮮民族으로서는 유감히 생각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에 대하여 절대 신중히 행동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張建相 談:蘇聯서 朝委 거부는 UN總會에서 협조되지 못한 만큼 대개 예측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정식으로 거부를 표시하였으니 조선민족의 통일운동은 국제 협조하에서 진행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이러한 불행을 구원하기에는 우리 민족이 자주적으로 통일을 相議하는 밖에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 總選擧도 政府수립도 이러한 민족적 통일 기초에서 진행되지 아니하면 朝鮮民族은 비참한 불행한 前途에 직면하고 있다고 본다.

▷朝民 李允榮 談:國際聯合에서 이미 선언하였던만큼 예기했던 바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北朝鮮 入境을 거부한데 대해서는 朝鮮問題를 위해서 유감이다. 일이 이와 같이 된 이상 全朝鮮 인구의 3분지 2 이상이 거주하는 南朝鮮에 총선거를 실시해서 UN委員團의 使命을 달성해 주기 바란다.

(서울신문, 1948. 1. 27)

蘇聯이 國聯委員團의 北朝鮮 入境을 거부한 데 관하여 각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표명하였다.

▷韓國政府樹立對策協議會:蘇聯의 태도는 확정되었으니 속히 남조선 총선거를 시행하여 정부를 수립하도록 國聯委員團에 요망한다.

▷南勞
오늘의 朝鮮問題 해결의 방법은 兩軍의 즉시 철퇴로 조선문제는 朝鮮人 자신에게 맡기는 이외는 他途가 없다.

▷勤民
앞서 UN總會에서 蘇聯이 UN朝鮮委員團 構成을 거부하여 美蘇의 協調를 보지 못했던만큼 금반과 같은 北朝鮮 入境拒絶은 이미 예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조선문제는 국제협의에서 진행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은 자주적으로 統一政府 수립을 相議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社民
UN에서 조선의 南北統一을 위하여 朝鮮委員團을 구성하였던 것이니 UN總會는 이번 사태에 대처하여 새로운 방법으로 朝鮮統一政府 수립의 방법을 구성하여야 한다.

(조선일보, 1948. 1. 27)

▷韓民黨

蘇聯側에서 유엔朝鮮委員團의 入北을 거부한 것은 유엔總會에서 蘇聯이 취하여온 행동의 논리적 귀결로서 우리의 예상하였던 바이다. 일이 이미 이에 이르러서는 또 더 주저하고 기다릴 것이 없는 터인즉 南部에서만이라도 속히 總選擧를 실시하여 전조선 獨立政府를 수립하고 유엔의 一員國으로 참가하여 世界列國과 외교관계를 맺고 通商을 행하여 民生問題를 해결하며 나아가서 南北統一을 圖하여야 할 터이니 이 점에 관하여 유엔위원단의 신속 과감한 행동이 있기를 本黨은 3천만 동포와 함께 간절히 요청한다.

▷韓獨協

蘇聯이 유엔朝鮮委員團의 入國을 거절한다는 회답을 한 것은 이미 예상했던 바이나 일이 여기에 이른다면 蘇聯의 태도는 확정되었으니 朝鮮의 獨立을 위하여 속히 南朝鮮만이라도 총선거를 勵行하여 朝鮮의 대표적 國會를 구성하고 그곳에서 政府를 수립하여 조선의 正式 政府로 인정하도록 努力할 것을 유엔委員團에 요망한다.

▷韓獨黨

南北總選擧로서 확고적 統一 獨立政府 樹立을 목표한 유엔 총회의 결정과 遂行할 사명을 가지고 온 위원단에 대하여 우리 韓族의 기대가 白熱化한 이때에 蘇聯의 越境拒否가 사실이라면 유엔 자신의 權威로 보아서 又는 弱小民族의 해방 독립과 인류 평화의 보장을 領導하는 强大國家의 책임으로 보아서 비상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委員團은 속히 難關 타개와 사명 완수에 관한 구비한 방법을 실현하기를 促望한다.

▷韓民黨

蘇聯의 兩軍撤退 제안이 眞意라 할진대 撤兵 前이라 해서 유엔 감시하에 자율적 統一選擧를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유엔위원단은 최후까지 노력하여 주기를 바라지만 평화적 해결이 희망이 없을 때에는 南韓地域에서만이라도 유엔 결의대로 3월말일 내에 韓國獨立을 達城시키는 것이 3천만의 要請이다.

▷尹琦燮

우리는 蘇側이 일반의 억측을 물리치고 유엔위원단의 入境을 허가하여 총선거가 속히 되기를 바랐던 것인데 소측이 이를 거부하였다는 것은 自他를 위하여 유감스러운 일이다. 蘇側이 南朝鮮의 入境을 거부했다 해서 總選擧가 못될리도 없으며 따라서 政府가 수립되지 못할 하등의 법적 이유도 事理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지역에서 선거한다 하더라도 그 정부는 물론 중앙정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南朝鮮에서만 選擧한다는 觀念 그 자체가 그릇된 생각이다. 우리 朝鮮사람의 힘이 미치는 地域內에서 하루속히 총선거를 하여 그 선출된 代議員들로 하여금 朝鮮 전체의 일을 相議케 하여 選擧가 실시되지 못한 지역에도 하루바삐 選擧가 실시되도록 노력하여야 하겠다.

▷獨促國民會

장차 韓國 전체를 衛星國家로 만들려는 蘇聯의 野望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므로 당분간 불가능시 되는 南北統一을 부르짖음은 그 野望에 시간적 이익을 주는 결과밖에 안날 것임을 지적하고 전인구의 3분지 2가 거주하는 남한에서 북한의 이익을 대표할 수 있는 代議員까지도 선출할 방식에 의하여 過渡總選擧를 勵行하여서 먼저 국권을 회복하는 것이 統一의 제1단계라고 일찍부터 주장하여 온 터인데 蘇聯은 과연 유엔委員團의 북한입국을 거절하여 왔으니 유엔委員團은 진정한 愛國者와 협의하여 南韓에서 總選擧를 즉시 勵行하기 바란다.

▷民主獨立黨

蘇聯의 北朝鮮 入國拒絶은 예측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금반 정식으로 南朝鮮 入境이 거부되어 그것이 사실화하였으니 朝鮮民族으로서는 유감히 생각한다.

(동아일보, 1948. 1. 27)

▷천도교보국당

蘇側의 거부 통고로 실망하지 말고 제3, 제4 본래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교섭하여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軍政 年長은 우리들이 원치 않는 바이다.

▷朝鮮共和黨

蘇聯이 보이코트하더라도 朝鮮統一을 전제로 한 中央政府를 남조선 一偶인 濟州道에라도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南朝鮮 軍政이 아닐 것이다.

(경향신문, 1948. 1. 27)

서울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1948년 0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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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2월 4일에는 민족보위국이 설립되었고, 마침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수립 7개월전인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이 창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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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2.1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임시헌법초안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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