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 5.18 광주사태에 대한 생각

2019.03.14 05:11

국민777

조회 수79

★ 1980년 5.18 광주사태에 대한 생각
시작은 미국처럼 대통령을 간선제로 선출하는 유신헌법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국민의 90% 이상 전폭적 지지를 얻어 통과된 법이었으나 그 당시 집권세력은
높은 지지에 자만했는지 유신헌법 비판등에도 처벌하는 법을 만들어 반대세력의
원성을 사는 무리수를 두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야권에서는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방식보다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총에 맞아 서거하고 계엄령이 선포된 시국에 도청을
점령하고 총과 탱크로 무장한 무리들을 당시의 국가기관이 진압하지 않는다는
것은 직무유기가 되었을 것이다. 어느쪽이 먼저 총을 쏘았는지 모르게 옆에서
동료가 죽어가는데 자신도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장한 무리들은
국가를 지키는 계엄군을 향해 총을 쏘고 계엄군은 자신들이 지켜줘야하는 국민인
무장한 무리들을 향해서 총을 쏘는 불상사가 일어나고야 말았다.
또란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총이없는 청소년이나 부녀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살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극심한 사회혼란을 조장해서 국가 전복을 목적으로 이러한
사태를 직간접적으로 선동하고 주도하고 또한 어느편으로든 위장해서 총이없는
청소년과 부녀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살상도 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북한측에게
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들이 있다. 당시에는 광주시청에 태극기가 내려가고
인공기가 게양되었다 하고 북한에서는 항상 남쪽에 정보원들을 숨겨 사회혼란을
조장하고 남쪽정부를 전복시켜 북한에 의한 지배권을 수립하려고 암약하고 있었고
큰 사건으로
1968년 1월 청와대 습격등을위한 30 여명의 북한군에의한 1.21 무장공비 침투사건
1968년11월 100 명 넘는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시 북쪽으로 도망 가면서
그해 12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는 이승복 어린이와 일가족을
돌로 내려치거나 칼로 찔러 죽인 사건
1969년12월 승객및승무원 50 여명을 태운 KAL기 납북사건
1976년 8월 미군에대한 북한군의 판문점 도끼만행으로 여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
1983년10월 대통령등 요인 암살을 위한 실제로 장관등 30 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아웅산 테러사건
1987년11월 10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KAL기 폭파사건
2010년 3월 50 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천안함 피격사건 등
모두 북한측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으로 무장공비 침투시에는 무고한 많은 시민이
살상 당했다고 한다.
따라서 1980년 5.18 광주사태도 북한측에 의해 선동 및 주도된 사건이라고 의심
안하는게 이상할 정도다. 그 당시 수사기관에서 철저히 수사하지 못한 책임도
있을 것 같다.
당시에 민주화란 생각으로 무장한 무리에 참여한 사람도 있겠으나 유신헌법
하에서도 적극적으로 선거참여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울 많이 당선시키도록 노력하고 대통령 선출에도 간선제에 의했지만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직간접적으로 자신들을 대변하는 사람을 많이 당선
시키도록 하여 당시 집권세력을 최대한 압박하도록 하는게 우선적이고 정도이지
않은가 생각한다. 그리고 5.18 광주사태가 폭동이라 하는 등 의견에 처벌하는 법을
만든다니 이것은 유신헌법 반대한다고 처벌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며 나치독일
처벌하는 법과 비교하는 것도 나치가 유태인 등을 한번에 수백명씩 독가스실에
몰아넣고 죽이는 등 세계를 향해 전쟁을 일으킨 나치의 행동을 생각할 때
불법 무장한 무리들을 정당하게 진압한 5.18과는 비교 자체가 않된다고 생각한다.

댓글 쓰기

비회원 프로필 이미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