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전’이 중요하다

2018.12.06 09:48

민중적,계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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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사회가 강력한 서구에선 시민사회 안에서의 헤게모니를 획득하기 위한 ‘진지전’이 중요하다 …….. ]

창간 70주년 기획

[김호기의 세상을 뒤흔든 사상 70년] (14)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 수고’…실패한 혁명가, 사상가로 승리하다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2016.06.21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 수고’

이탈리아 공산당 창당을 주도하고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맞서 싸운 안토니오 그람시는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실천적 대안을 제시한 혁명가이자 사상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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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와 ‘헤게모니’는 그람시 사상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개념들이다. 그에 따르면 한 사회의 상부구조는 강제의 영역인 좁은 의미의 ‘국가(정치사회)’와 ‘사적’이라 불리는 유기체들의 총체인 ‘시민사회’로 구성된다. 그가 이렇게 상부구조를 국가와 시민사회로 구분한 것은, 부르주아 지배가 억압적 국가기구만을 통해 이뤄지는 게 아니라 시민사회에 뿌리내린 다양한 제도 및 실천(교회, 학교, 언론 등)을 통해 유지되고 있음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헤게모니란 바로 이 시민사회에서 지배계급이 지적·도덕적 지도력의 행사를 통해 창출하는 피지배계급의 자발적 동의를 말한다.

그람시가 헤게모니를 주목한 까닭은 이탈리아에서의 사회주의 이행 전략의 모색에 있었다. 시민사회가 허약한 러시아에선 국가에 대한 직접적인 투쟁인 ‘기동전’이 중요한 반면, 시민사회가 강력한 서구에선 시민사회 안에서의 헤게모니를 획득하기 위한 ‘진지전’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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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606212048005

1993.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 …… 기존의 기동전 중심의 운동구조에서 …… 진지전적 성격이 보다 강화되어야 …….. ]

[ …… 장외진보운동의 역량을 가능한한—다양한 사회영역에서—제도역량으로 전화하여 장기전에 대비하여야 ……..

….. 민중적,계급적,변혁적 시각을 포기하는 경향(청산주의적 경향)에 대한 비판이 요구 …….. ]

[정책강좌] 김영삼정권의 성격과 대응

글쓴이 전국연합
작성일 1993년 11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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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이 자료는 지난 상반기 대구경북연합에서 진행되었던 정책강좌의 발제문 및 토론자료입니다. 자료양이 많아 몇차례에 나누어 게재합니다.

1. 김영삼정권의 성격과 대응방안(조희연:성공회신학대학 교수)

현정권의 성격과 우리의 대응 (손호만: 대구노동교육협회 대표)

2. 노동운동의 현황과 과제 (김승호:전국노운협 지도위원)

한국노동운동의 현단계와 전망(김형기: 경북대교수 경제학)
노동운동의 현황과 과제(정우달:대구지역노동조합연합 의장)

3. 새로운 정치조직 건설의 일보 전진을 위하여
(김근태 : 전 국민회의 집행위원장)

민족민주운동의 발전과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위하여
(황인성 : 전국연합 상임집행위원장)

4. 현재의 시민사회의 논의에 관하여 (최장집:고려대 교수, 정치학)

5. 통일운동의 현황과 과제(정대화)

6. 지방자치제와 그 운동적 의의 (김용석 :인천노동문제상담소 이사)

7. 대구.경북 민족민주 운동의 과제
(민주주의 민족통일 대구경북연합 정책강좌준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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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정권의 성격과 대응방안

조희연 (성공회신학대학 교수.사회학)

1. 김영삼정권의 구조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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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현시기 전선변화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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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정권 하에서의 한국사회의 변화 전망과 민주진보진영의 진로

(1) 한국사회의 변화의 측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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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선 이후 민주진보진영의 진로(참고문헌7)

(1) 진로 모색의 전제적 인식

1) 기존의 기동전 중심의 운동구조에서 민주주의적 진지를 다양하게 확보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진지전적 성격이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2) 역량의 단순집중 구조에서 분화 속의 집중이 요구된다.사회진보의 역량들을 담는 다양한 형식이 요구되고 그것들의 기초 위에서 ‘분화적 통일’을 모색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3)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해체되고,보수세력/자본세력과 반대세력 간의 대립으로—우리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변화되고 가고 있으므로,기존의 민주화운동의 동력을 새로운 진보운동의 동력으로 최대한 전화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4) 80년대 민주진보운동이 쌓아온 장외진보운동의 역량을 가능한한—다양한 사회영역에서—제도역량으로 전화하여 장기전에 대비하여야 한다. 제도 자체 속에서 운동의 입지를 확보하는 것의 중요성

5) 80년대 정파적 대립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제중심의 ‘大同小異’구도를 창출하여야 한다. 80년대의 민중적,변혁적,계급적 세계관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80년대적인 정파적 대립의 구도를 뛰어넘으려는 자세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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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와 함께 혁신과 계승의 변증법적 통일의 관점을 가질 것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현실변화에 눈을 감는 경직된 경향(사수론적 경향),현실변화에 대한 감응력(sensitivity)을 가지면서도 80년대 우리가 획득하였던 민중적,계급적,변혁적 시각을 포기하는 경향(청산주의적 경향)에 대한 비판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양편향을 극복하면서 변화하는 현실에 창조적이고 개방적으로 대응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5) 80년대는 ‘변혁과 개량’이라고 하는 자기정체성을 강조하는 배제의 논리 속에서 운동을 전개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90년대에는 변혁적,진보적 관점의 견지를 가지면서도,편협한 헤게모니관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다양한 진보적 잠재력을 갖는 집단들과 겸허하게 연대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요구되다고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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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러한 세력들과 국면국면에 따라 합종연횡하면서 진보세력의 대중적 입지를 강화하는 방식이 요구된다고 하는 점이다.

(2) 3영역 복합대응론

*재야민중운동으로 혼합되어 있던 여러 측면의 분화

1) 합법정치영역에서의 제도정치활동(정당운동)
2) 기본대중조직운동(계급적 대중운동)
3) 시민적 제영역에서의 사회운동(시민운동)

1) 합법정치영역에 독자적 진입하는 문제와,제도정치영역 자체에 대한 국민적
무관심화(정치에 대한 관심 자체의 실종)의 저지하면서 反민자당의 ‘전국적인
개혁적(혁신적인) 정치적 구심’을 형성하는 문제가 동시에 주어짐.
국가/정치사회/시민사회—시민사회적 영역에서의 진보운동의 힘에도 불구하
고 그것이 정치사회적 영역에서의 역량으로 전화되어 있지 못함.이것을 어떤 형
태로든 시행하여야 할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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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정치적 실천과 관련하여 제시될 수 있는 쟁점은, 1)어떻게 하면 운동과
정치의 올바른 결합을 통하여 정치 자체에 대한 국민적 무관심화를 저지할 것인
가하는 점,

2) 어떻게 하면 민중운동의 정치세력이 독자적인 실체로서 제도정치에 개입하여
갈 것인가 하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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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떻게 하면 진보세력이 제도정치영역에 위력적으로 진입할 것인가하는 점 등
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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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간 전국연합 등으로 표상되는 재야민중운동 조직 내부에 혼재되어 있는 대중운동과 정치운동으로서의 성격이 분화될 필요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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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계급적 대중운동과 일정하게 차별화되는 시민적 대중운동의 개척과 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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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필자는 경실련이 ‘선점’하고 ‘독무대’로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적 활동의 영역에 민중적 입장을 갖는 진보적 시민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진보적 시민기구는 1)경실련과 차별화되는 정책적 대안들과 개혁프로젝트를 제시하고,2)가투(街鬪)적 방식이 아닌 다양한 시민적 방식으로 활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경실련이 민중운동과—부분적으로—대립하는 시민운동의 성격이 존재한다고 한다면,’민중운동과 함께 가는 시민운동’이 될 것이다.

이러한 진보적 시민운동기구가 존재할 때 경실련 등 시민운동과 계급적,정치적 입장이 다른 민중운동이 시민운동과 정당하게 연대할 수 있는 매개를 갖게 될 것이라과 생각한다.이러한 진보적 시민운동기구는 경실련 등 기존의 ‘체제 내적인’ 시민운동과 연대하고 동시에 ‘체제변혁적인’ 민중운동과 연대하는 기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필자는 본래적인 시민운동의 제영역들,변형된 정치운동의 성
격을 띈 시민운동의 영역,지자제 혁신운동 등에 과감하게 우리의 역량이 분산배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이러한 분산분화의 기초 위에서 운동의 더 높은 통일을 고민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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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go.jinbo.net/webbs/view.php?board=nadrk-6&id=6&page=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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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 참여연대

[…… 그람시적 의미에서 이른바 시민사회적 공간에서의 적극적인 헤게모니 투쟁이 필요 ……..

…… 변화하는 현실의 결에 맞추어 새로운 운동진지들을 만들어 대응 ………

……’장작은 결따라 패야 한다’……친자본적이 아니라 친노동적인 시민운동도 가능 ……..

…….. ‘맑스 없이 맑스 앞에서’, ‘레닌 없이 레닌 앞에서’ 사고하고 실천하여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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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수도없는 다짐을 스스로 지키지 못하였다. 그것은 참여연대를 창립하는 일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 마감되고 2년여 동안 근신하던 나에게 90년대 초반을 넘기면서 새로운 고민이 찾아왔다. 그것은 87년을 분깃점으로 하여 노태우정권 및 김영삼 정부로 이행하면서, 즉 위로부터의 보수적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주어지는 새로운 운동의 위기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하는 문제의식이었다. 특별히 80년대 후반부터 시민운동이 활성화하게 되면서 기존의 민중운동의 입지를 좁히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노태우정권 초기에 마치 “급진적인 민중운동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 온건한 시민운동가 도래하였다”는 식의 보수적 분위기가 팽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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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람시적 의미에서 이른바 시민사회적 공간에서의 적극적인 헤게모니 투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시민운동의 계급적 한계는 분명하지만 그것의 계급적 한계를 지적하는 것으로는 백전백패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나의 생각은 진보적 시민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런 생각은 실천문학(93년 겨울호)에 쓴 ‘민중운동과 시민사회, 시민운동’이라는 논문으로 구체화되었다. 나는 이것을 처음에 100부, 나중에 100부를 더 찍어 많은 실천지향성이 강한 동료교수들, 운동권의 동료들, 민중운동의 대표적인 지도자 분들을 찾아다니며 이런 진보적 시민운동체의 건립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다녔다. 당시 사회운동권 강좌에 초대받을 때만 어김없이 이러한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나는 지금도 ‘장작은 결따라 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땅의 진보주의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장작을 뽀개려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작을 뽀개기 위하여는 도끼날을 더욱 날카롭게 가는 것 뿐만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현실의 ‘결’을 올바로 파악하여 결따라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요구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80년대에 우리는 도끼날을 날카롭게 하는 일에 진력하여 왔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비판의 무기’를 획득하고 그것을 다듬는 일에 진력하여 왔는지도 모른다. 물론 무딘 날을 가지고 장작을 뽀갤 수 없기 때문에 이는 기본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변화하는 현실의 결에 맞추어 새로운 운동진지들을 만들어 대응하는 노력이 없는 한 날만 날카롭다고 하여 장작 패는 일이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친자본적이 아니라 친노동적인 시민운동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월간 사회평론의 실패에 대한 자책감은 나를 대단히 소극적이게 만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을 해야 민중운동이 삽니다’ ‘제발 이런 일을 하십시요’하고 역설하고 다녔다. 아무도 귀기울이는 것 같지 않았고, 결국은 내 스스로가 그러한 진보적 시민운동에 뛰어드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참여연대 창립에 참여하면서 그 명칭을 가지고 오랜동안 논쟁을 하였다. 사회과학 그룹에서는 진보적 시민운동, 혹은 정책적 시민운동을 하기 위한 지향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참여민주사회’라는 개념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인권운동그룹이나 법학자들은 인권이라는 말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회과학그룹은 인권이라는 개념이 80년대 식의 운동의 인상을 주므로 쓰지 말자고 주장하였고, 반대그룹은 참여민주사회가 일단 정정체불명이고 인권이야말로 새로운 운동의 핵심가치라는 점에서 고수를 주장하였다. 여기서 ‘참여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라고 하는 16자의 긴 이름이 탄생하게 된다. 나는 정작 참여연대를 하면서 인권개념의 중요성을 깊게 인식하게 되었고 후에 명칭논쟁이 재론되었을 때 인권을 빼면 않된다고 강하게 주장할 정도로 입장이 바뀌어 있었다.

참여연대를 몸담으면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과거의 민중운동이나 진보적 기준으로만 보면 그다지 진보적이 아닌, 그러나 이 시대를 고민하고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고민하고 자기를 헌신하려고 하는 진지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사실 80년대는 임박한 혁명을 전제로 하여 선진적인 의식을 갖는 사람을 최우선시하는 풍토였기 때문에 이러한 점은 잘 보이지 않았다. 운동은 선진적인 사람만이 아니라 대중적 참여 속에서 비로서 풍부화된다고 할 때, 나는 그 가능성을 보게 된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우리 사회의 민주적인 많은 잠재력은 민중운동이나 학생운동의 헌신적인 투쟁을 통해서 우리 사회와 국민이 변화하였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나는 바로 과거 전투적인 사람들이 이 새로운 잠재력들을 보고 함깨 가는 동반자적 운동을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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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국가의 현실적 ‘권위’를 갖고, 러시아혁명의 ‘빛나는’ 후광을 지닌 레닌이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지 않다. 그 분의 저작을 신봉하고 그것을 현실에 관철하기 위하여 노력하기만 하면 되는 ‘전지전능한’ 맑스가 우리 곁에 있지도 않다. 외경스럽게 사회주의 붕괴 이후 나는, 히틀러에 대항해 싸우다가 옥사했던 본회퍼가 했던 말을 이따끔 상기하게 된다. 즉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 ‘맑스 없이 맑스 앞에서’, ‘레닌 없이 레닌 앞에서’ 사고하고 실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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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 당대, 1998에 실린 연보를 수정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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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5. 참여연대 — 민노당

[…. 참여연대가 민주노총 짝사랑을 더 세게 했으니까요.(웃음) 앞으로 재벌개혁 등 민주노총과 함께 결합하는 활동을 자주 벌였으면 좋겠네요.” – 참여연대 박원순…… ]

[…. 울산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낮에는 낙선운동을 했고, 밤에는 민주노동당에 가서 선거운동을……. ]

“우린 서로 짝사랑만 했어”

개혁의 쌍두마차, 민주노총과 참여연대의 만남

00.05.08

“너무 일방적으로 그쪽을 짝사랑을 했던 것 같네요”

“아닙니다. 이쪽에서는 오래 전부터 그쪽과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네요”

이 대화는 사랑하는 연인들의 대화내용이 아니다. 5월 8일 오후 12시 광화문에 있는 한 횟집. 오랫동안 서로를 짝사랑했다는 민주노총(위원장 단병호)과 참여연대(공동대표 김중배,박상증, 박은정)가 만났다. 누구랄 것도 없이 두 단체는 서로가 상대방을 ‘짝사랑’했다고 고백하기 시작했다.

“총선과정에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민주노동당) 당선 운동하고, 참여연대는 낙선운동하고… 민주노총에서 너무 일방적으로 참여연대를 사랑하고 있던 것이 아니였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웃음) 한 마디로 애증관계였었죠” -민주노총 이수호 사무총장

“민주노총에 대해 불만은 없습니다. 짝사랑의 강도로 이야기 하자면 참여연대가 민주노총 짝사랑을 더 세게 했으니까요.(웃음) 앞으로 재벌개혁 등 민주노총과 함께 결합하는 활동을 자주 벌였으면 좋겠네요.” – 참여연대 박원순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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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낮에는 낙선운동을 했고, 밤에는 민주노동당에 가서 선거운동을 벌이는 부적절한 운동을 펼쳐야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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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참여연대 김중배 대표가 말을 받았다.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은 따로가 아니라 함께 가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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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07085

* 2004.4. 전대협 — 민노당

[ …… 전대협 세대가 열린우리당으로 우회하지만 민주노동당과 함께 우리 사회의 방향을 잡는 역할을 하겠다 ……. ]

[…. 민족·민주 세력이 주도하는 열린우리당이 돼야 하며 그렇게 될 수 있다…..

….전대협 세대를 포함해 50~60명의 현역 의원들이 ……. ]

[….. “자주·민주·통일의 깃발을 버리면 더 이상 전대협이 아니다 ……. ]

“민족 · 민주 세력이 당을 이끌어야”

[2004.04.29 제506호]

우리당 전대협 세대 맏형 격인 이인영 당선자… “이라크 추가파병에 반대한다”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이인영 당선자(39·서울 구로갑·열린우리당)는 4월17일 기자와 만나 “자주·민주·통일의 깃발을 버리면 더 이상 전대협이 아니다”라며 “전대협 세대가 열린우리당으로 우회하지만 민주노동당과 함께 우리 사회의 방향을 잡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는 전대협 1기 의장을 지냈으며, 사회에 진출한 뒤로도 전대협 출신자들 사이에서 ‘맏형’ 노릇을 해왔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공천으로 출마해 낙선했다가 이번 총선에서 원내 진출 기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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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의 노선이 잡탕이라는 견해도 있다.

=구체제와 급진적 자유주의, 민족·민주 세력이 공존하고 있다. 구체제는 노심(盧心), 권력, 당권 따위를 추종하는 경향을 말한다. 급진적 자유주의는 행태는 급진적인데 철학은 자유스러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민족·민주 세력이 주도하는 열린우리당이 돼야 하며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대협 세대를 포함해 50~60명의 현역 의원들이 그 주축을 형성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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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은 이제 폐지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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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과거 정치의 연장에서 무원칙적으로 야당의 주장을 끌어안는다면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이 조용히 있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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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841.html

2007.7.

[ ……. ‘문화전쟁에서의 우파진영 패배’ …….

……. 지난 사반세기 동안 좌파가 교육, 미디어 같은 사회문화영역에 침투 …….. ]

독립신문 창간 5주년 기념식 (오디오)

“독립신문이 없었더라면…” 참석자들 격찬 이어져

[ 2007-07-28 ]

우파진영 최초의 인터넷신문인 독립신문이 창간 5주년을 맞았다.

독립신문은 27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이상돈 중앙대 교수의 책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출판 기념회와 창간 기념식을 갖고 재도약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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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이상돈 중앙대 교수의 책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저술 배경과 핵심 내용 등에 대한 동영상 자료 상영이 있었다. 약 10분 분량의 동영상은 좌파와 우파의 대결에서 ‘문화전쟁’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책을 읽지 않는 우파와 책 읽는 좌파, 이영희 한양대 교수의 저서를 통해 보편화된 ‘새는 양 날개로 난다’는 말의 선전효과 등을 예로 들며 문화라는 대중 정서의 기저를 지배함으로써 정치라는 표층을 지배한 좌파들의 ‘진지전’ 이론을 지적하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동영상에서 이상돈 교수는 이런 좌파들의 논리에 매몰된 한나라당 정치인들과 기성 언론인들의 행태도 비판하며 미국 우파들의 문화전쟁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1960년대까지 좌파가 문화계를 지배했었으나 이후 우파 학술재단, 독서클럽 등이 생기면서 서서히 실지를 회복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이 책은 현 정권과 지배세력인 좌파에 대한 비판서”라며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읽어주기를 기대하고 책을 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이제 우리나라도 진보 좌파정권의 많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고쳐나가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며 “이걸 실행할 수 있는 새로운 세력이야말로 참된 보수세력”이라고 주장했다.

동영상 상영이 끝난 뒤 이상돈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 교수는 젊은 세대의 빈곤한 의식과 현대사에 대한 이해부족을 걱정했다. 이 교수는 그 원인을 ‘문화전쟁에서의 우파진영 패배’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난 사반세기 동안 좌파가 교육, 미디어 같은 사회문화영역에 침투했기 때문”이라며 최근 출판업계의 좌편향을 설명했다. 이 교수는 “책 시장은 문화전쟁의 최전선”이라며 “지금 우파진영은 좌파의 ‘문화 진지전’에서 지고 있다”고 현 상황에 대해 우려했다.

그는 “지금 교보문고와 온라인 서점 Yes24의 사회분야 베스트셀러가 유시민의 ‘대한민국 개조론’ 신영복 교수의 ‘여럿이 함께’ 강준만 교수의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쿨(Cool)한 에너지’ 등이다. 출판계 소문에 따르면 대선까지 10권 가량의 책이 더 나온다”면서 “우파진영은 뭐하고 있나? 대선을 앞두고 손놓고 있는 것 아니냐”며 문화와 책에 무관심한 우파를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법조계, 언론계, 정치계조차 스스로 도덕성의 우위를 포기한 채 좌파의 논리에 함몰되고 있는 상황과 이렇게 된 이유를 설명하며 “이젠 우파가 지갑을 열고 행동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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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존 뉴스]http://www.freezone.co.kr/

2009.4.

촛불의 기동전, 촛불의 진지전

시사IN 편집국 2009년 04월 27일 제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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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5일 : 대규모 가두집회로는 마지막 촛불집회가 열렸다. 경찰은 색소를 탄 물대포를 쏘며 밤 11시를 넘기지 않고 시위대를 진압했다.

‘기동전’이 끝난 시대, 온라인에서는 ‘진지전’이 한창이다. 많은 커뮤니티가 정기 모임을 갖고 각종 집회에 참가하며 자체 MT를 조직하는 등 촛불의 인연을 일상으로 이어가고 있다.

다음 아고라, 광우병국민대책회의, 미친소닷넷, 안티MB카페, 촛불소녀 코리아 등은 ‘기동전’ 당시 거점이었다. 촛불자동차연합, 유모차 가족, 연행자들의 모임 등은 기동전의 결과로 생긴 진지다.

언론운동은 촛불집회의 가장 굵은 가지였다. ‘언소주’의 활발한 활동은 촛불 이후로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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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4311

2009.10.

[ …… 이에 대응하는 민주진보의 진지전이 요구된다. …….. ]

[기고] 시민정치와 새로운 진보

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학

2009.10.20

얼마 전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시민주권’ 모임을 발족시켰다. 이 모임은 2010년을 민주주의와 시민주권의 해로 만들기 위해 ‘2010 민주주의 올來’ 범국민운동을 제안하고, 민주·민생·평화를 위한 모든 세력과의 소통과 연대활동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현실정치에서나 담론장에서나 시민정치, 시민주권, 시민민주주의 같은 말들이 힘을 받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새로운 진보의 열쇠말 중의 하나로 떠오른 시민정치가 정확히 뭘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공교롭게도 시민주권 모임 발족식과 같은 날 있었던 참여사회연구소 시민정치센터 발족 심포지엄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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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이명박 정부가 ‘어떤 정부인지’하는 문제에 대한 복합적인 생각이다. 이 정부는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정권이라는 말조차도 너무 ‘우아’할 정도로 극단적인 천민적 보수주의로서 그 정당성이 매우 불안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최근 친서민 중도실용 전략에서 보듯이 보수의 장기집권을 위해 멀리 내다보는 ‘진지전’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응하는 민주진보의 진지전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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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

[ …… 문인들은 거의 100% 진보 ……..

…… “진지전에서 패배했기 때문” ……..

…… 문인들의 (박근혜) 지지성명을 얻어보려했지만 실패했다 ……… ]

이문열 “박근혜 당선, 최악면해 안도했다”

심혜리 기자 2013.01.11

소설가 이문열씨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대해 “최악을 면했다”고 평했다.

이씨는 11일 YTN 라디오 ‘김갑수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대해 “최악을 면했다는 느낌”이라며 “그래서 (마음이) 편한 게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씨는 “걱정의 종류가 달라졌다”며 “기본적으로 누가 되느냐의 문제는 이제 피했는데 앞으로 5년 동안 산적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걱정”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또 최근 논란이 된 김지하 시인의 발언에 대해 “오래간만에 용기있는 발언을 들었다”고 밝혔다. 김 시인은 최근 민청학련 사건 무죄판결에 대해 “돈이나 많이 줬으면 좋겠다”는 발언과 “문재인은 형편없고, 안철수는 깡통이다”라는 말을 해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이씨는 “김 시인의 주관적 편견이 있는 것 외에는 10중 7~8 동의한다”며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아울러 문화계에 진보인사들이 편중돼 있는 것이 “이상한 느낌”이라며 “대한민국 유권자의 이념 분포는 5대5 정도로 엇비슷한데 문인들은 거의 100% 진보”라고 말했다. 이같은 현상의 이유에 대해 이씨는 “진지전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씨는 “전해들었지만 이번 선거에서 이쪽(보수)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문인들의 (박근혜) 지지성명을 얻어보려했지만 실패했다”며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이익이 싫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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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1111514251&code=910100#csidxee9900665fa94848725222bc79208c2

2013.1. 이문열

“이제는 문화 권력을 되찾을 때”

작가 이문열, 대선 이후를 말하다

미래한국

18대 대선을 두 단어로 요약하면 ‘노장(老壯) 돌풍’이 아니었을까. 이번 대선에서 89.9%라는 경이적 투표율을 기록한 50대와 그 이상 연령층에 대한 언론들의 분석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정희의 폭주로 달아올랐던 TV토론, 反박근혜 정서로 물들었던 SNS의 기세는 결국 중장년층 유권자들이 투표를 위해 길게 줄을 서는 ‘명장면’으로 형상화됐다.

인터뷰│김범수 편집위원, 황성준 편집위원

보수우파진영의 대표적 작가로 꼽히는 이문열은 이번 대선을 어떻게 관전했을까. “스스로 아주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또래가 다 비슷한 생각이었던 모양”이라고 술회하는 그를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에서 만났다. 마야문명이 세계멸망을 예고했던 바로 다음 날인 12월 22일 아침에 이뤄진 이 인터뷰에서 이문열은 자못 힘찬 어조로 새로운 계획과 희망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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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도 이곳에서 보셨겠군요. 어떠셨습니까.

저는 그동안 제가 굉장히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이번 선거를 겪으면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웃음) 신문에서 분석하는 걸 보면 5, 60대 심리를 많이 언급하잖아요? 저의 심리와 거의 차이가 없더군요.

방금도 전화를 한 통 받았는데요. 전혀 정치적일 이유가 없는 사람조차도 투표일이 가까워오니까 가슴이 답답해지고 가만히 못 있겠더래요. 그래서 자기가 안철수도 아닌데 투표를 꼭 하고 출국을 했다고 하네요. 다들 비슷한 심정이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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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이번 대선을 그저 단순한 선거가 아니라 어떤 커다란 사건의 시작으로 읽은 모양입니다.‘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평범한 사람들의 감정을 표현만 과격하게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웃음) 대신에 세상에 대해서 몹시 비관적으로 기울었던 인식이 이제 조금씩 균형으로 접어드는 느낌을 받아요.

– 작가 이문열을 겁먹게 할 정도로 DJ-노무현 정부 시절에 많이 힘드셨던 건가요.

정말 힘들었어요. 너무 잔인해서 인터넷을 아예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거기 한 번 들어가면 1주일 동안 기분이 나빴으니까요. 내 글을 올리는 것 자체가 자해행위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근거도 없는 이상한 말들이 넘쳐나는 데 이걸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거예요. 과연 익명으로 말할 수 있는 자유라는 게 그렇게 큰 것인지 한번쯤 연구해볼 주제입니다. MB정부 들어서도 득 될 건 하나도 없었는데, 그 (공격의) 빈도가 좀 줄기는 했죠.

정보라는 게 이 사회에선 소통되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흐릅니다. 송신도 수신도 이해도 일방적으로 돼요. 내가 보낸 정보를 고치지도 못하지요. 자기들끼리 정보 내용을 결정하면 진짜 발신자는 개입을 할 수 없는 구조가 형성됩니다. 한 번 굳으면 절대로 교정되지 않아요.

뚜렷한 경상도 말씨로 그간의 고충을 털어놓는 그는 의외로 악플, 루머에 관련된 사건들의 개요를 상당히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 뽀빠이 이상용, 주병진, 나꼼수, 타진요 등에 대한 판례와 세간의 인식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故 최진실 얘기가 나왔다.

허위정보로 손해를 봤어도 그 손해를 씻을 수 없다는 사실은 사람을 절망하게 만듭니다. 저는 최진실이 자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우연한 계기로 자세히 관찰하게 됐어요. 그 사람이 ‘문화 권력’으로 처음 지목되는 시점부터 봤죠.

처음으로 최진실이 문화권력으로 지목된 것은 인터넷이 시작된 1995년 무렵이었어요. 그녀가 배우로서 절정이던 시기였습니다. 그 때 소위 마오쩌둥의 홍위병 같은 느낌의 학술 반동권위를 차용한 개념들이 우리나라에서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 문화권력 중 연예계 대표로 최진실이 걸린 겁니다. 가장 잘 나가는 인물이었으니까요.

대표적인 흐름을 주도하던 잡지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최진실과 함께 문학계에서는 저를 집어서 공격했어요. 저한테 책을 직접 보내기까지 했는데, 10명쯤 꼽힌 문화권력 중 최진실이 있더군요. 딴 사람들이야 그런가보다 했는데 최진실을 보면서는 ‘참 불쌍하다. 어떻게 견디겠나’ 싶었거든요.

처음에는 성적인 행실이 나쁜 걸로 공격을 했어요. 그러다 나중엔 “돈 밖에 모른다”는 식으로 인성적 측면을 공격했고요. 그녀가 30대가 되면서 다시 한 번 드라마로 전성기를 맞이하자 급기야 그 사채업 루머가 돈 거죠. 이건 최진실에게 엄청난 절망감을 안겼을 겁니다.

그런데 그 루머를 유포했던 증권사 여직원이라는 용의자는 제가 알기론 벌금 얼마 내고 말았을 거예요.

– 선생님도 그녀와 비슷한 경험을 하셨군요.

수도 없이 당했죠. 변호사 친구한테 도움을 요청해서 처리했지만, 결국 끝에 가서 남는 건 저에게 죄가 없다는 증명 밖에 없었어요. 내가 입은 상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보상인 거죠. 개인한테는 형벌도 그런 형벌이 없습니다.

“MB정부, 문화 헤게모니에 무관심”

– MB정부는 좀 달랐습니까?

문화적 헤게모니에 관한 얘기를 하자면, MB정부에는 초기나 지금이나 제대로 이 문제에 대해서 신경 쓰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비유하자면 완전히 저쪽으로 넘어가버린 진지에 사령관이나 교체하는 정도인데, 그 사령관 역시 전문성 있는 사람이 아니었죠. 함락된 진지에 낙하산 타고 들어가서 적들 눈치나 보고 임기 채우다가 나가는 패턴이 반복됐어요.

– 평론 분야를 포함해서 문화계에 전반적인 변화는 5년 간 없었습니까?

전혀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념적으로 가장 참혹하게 황폐화된 곳이 문화 진지고, 그 중에서도 문학 쪽의 헤게모니는 90% 이상 저쪽으로 넘어가 있습니다. 그게 근원이 되어서 미술이나 음악 쪽으로까지 간 것이거든요. 돌아보면 나 밖에 없는 것 같은 느낌마저 받아요.

지난 10년 간 문화평론계에서는 저를 문학가 취급 안 했습니다. 정치가 취급했죠. 복거일, 박홍 신부, 조갑제 등의 인사들도 마찬가지에요.

그들이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결코 극단주의자도 아닌데, 이 세계에서는 그들을 그냥 두지 않고 괴물로 만들어서 없애버립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보수 문단에서 이름을 내걸고 ‘나 박근혜 지지한다’고 말한 문인은 보지 못했어요.

– 김지하 선생의 박근혜 지지가 상당히 화제가 되긴 했습니다.

네. 그런데 김지하 선생은 보수 문인은 아니죠. 그 분 같은 경우에는 상징성이 커서 (박근혜 당선인 쪽에서) 굉장히 감사해야 할 거예요.

별 효과 없었다는 사람도 있긴 한데, 효과라는 건 적극적인 효과와 소극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겠죠. 저쪽 진영을 끌어오는 힘은 없었을지 몰라도 이쪽 진영을 결속시키고 자신 없는 태도에 자신감을 부여했다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기여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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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무너진 문화 헤게모니’에 대한 얘길 해 보죠. 회복 혹은 정상화를 위해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하겠습니까?

역으로 생각해서 저들이 자신의 권력을 형성한 과정을 보면 되겠죠. 길고 험난한 과정이 필요하겠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됩니다. 60년대 중반, 군사정부 하에서 시작된 그들의 시도가 제대로 결실을 본 건 80년대가 되어서였거든요.

15년쯤 지나서 겨우 결실을 봤어요. 그러니 그들만큼 세월을 안 쓴다는 건 욕심이겠죠. 최소 15년 정도를 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긴 시간을 구축해서라도 토대를 마련하지 않으면 지금의 사회적 비용은 계속 지불되겠죠.

단순히 문화기구 몇 개 만들어서 될 문제는 이미 아닙니다. 지난 5년 동안 MB정부가 중요한 포스트에 사령관을 낙하시켰지만 파급력은 10%도 못 됐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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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현대사는 다시 한 번 해석되어야 합니다. 갈 길은 멀지만 이제는 ‘진지한 진지탈환운동’을 벌일 때가 왔어요. 보수의 문제는 꼭 뭔가를 해야 할 때 안 한다는 거거든요. 이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습니다.

– 그간의 상처에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 이제 보수적 생각을 가진 젊은 친구들도 많습니다. 좌편향 문화권력 사회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작용이 시작된 것이죠.

저에게도 이번에 위로가 된 게 SNS가 반드시 저들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알았어요. 우리 사회는 보수-진보에 있어서 통상 6 : 4와 4 : 6을 왔다 갔다 하거든요. 그런데 왜 이 문화 분야만큼은 2 : 8이나 1 : 9가 되냐는 거죠. 뭔가 잘못된 것이고, 전 시대의 문화 권력이 한쪽으로 편중돼 있었다면 이제 거기에 저항할 때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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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1-01 ]

“삼성은 우리 운명… 문화 기여 생각해야”

작가 이문열씨, 사장단회의 강연

문주영 기자 2014.10.15

“삼성은 우리 운명… 문화 기여 생각해야” 작가 이문열씨, 사장단회의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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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문열씨(66·사진)가 15일 삼성그룹 수요 사장단회의에서 ‘작가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현실과 기업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씨는 강연을 마치고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에서 기자들과 만나 “삼성은 우리 사회 구조의 하나라서 운명처럼 같이해야 할 부분이 있다”며 “삼성이 문화적 헤게모니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산업적인 것 말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삼성에 무슨 얘기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이탈리아 공산당을 세운 안토니오 그람시 이론에 나오는 ‘진지전’과 ‘기동전’의 개념으로 한국 사회를 분석했다. 진지전은 참호 속에서 숨어서 싸우듯 장기전을 펴는 투쟁 전략을 말하고, 기동전은 러시아 혁명처럼 국가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벌이는 기습적인 탈권 투쟁을 말한다. 러시아에선 시민사회가 활성화되지 않아 체제 밖 세력이 기동전을 벌여 혁명에 성공했다. 반면 시민사회가 활성화된 서구 자유주의 국가들에선 기동전이 불가능해, 진지전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씨는 “시민사회의 기능이 활성화된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은 우리 사회의 기본 구조를 이루면서도, 동시에 진지의 역할도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0152133205

2013.2. 탁현민 — 진지전 — 나꼼수

[ …… ‘벙커1’은 나꼼수 멤버가 새롭게 마련한 정치학습 강연장이다. ………

…… 주류문화에 대항해서 공격하는 ‘문화진지’를 구축해 ‘진지전’을 전개해야 ……..

…… 주목해야 할 인물이 공연기획자이자 방송 진행자인 탁현민 …….. ]

[토요판 커버스토리] 누가 ‘문화’를 지배하는가

동아일보 201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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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7시 반 서울 종로구 대학로 정미소 소극장의 지하에 자리 잡은 ‘벙커1’을 찾았다. ‘벙커1’은 나꼼수 멤버가 새롭게 마련한 정치학습 강연장이다. 평일 저녁인데도 20, 30대 청중들이 200석 규모의 객석을 빼곡히 채웠다.

이날의 강사는 문재인 민주당 후보 대선캠프에서 TV광고를 주도했던 카피라이터 정철 씨였다. “죄송하고, 미안하고, 반성해야 할 사람이 강연하는 게 맞는가 해서 주저했습니다. 실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끝은 시작이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 강연을 하게 됐어요.” 그는 총선과 대선에서 선보였던 문 후보의 광고캠페인 동영상을 청중과 같이 보면서 말했다. “결과가 정의롭지 않았지만, 지난 1년간은 정말 행복했고 후회가 없습니다.”

▼ “정치는 52:48… 문화는 10:90 좌파 압도” ▼

평일 저녁 ‘벙커1’에선 정치 시사 예술 분야의 다양한 강의가 펼쳐진다. 일요일 오전에는 나꼼수 멤버이자 지난해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했던 김용민 씨가 주재하는 ‘벙커1 교회’가 열린다. ‘벙커1’의 안내문은 이렇다. “MB정권 5년간 각개 전투로 병력을 소진한 아군들을 위해 개설한 마지막 진지이다. 함께 견디며 힘을 모으기 위해 비상시에는 작전을 수립하고, 평시에는 사기를 충전하는 다목적 복합기지의 기능을 수행한다.” 안내문에는 ‘잠입하는 길’ ‘보급품’ ‘위문공연’ 같은 군사용어가 많다.

나꼼수가 만든 학습공간이 ‘벙커’, 즉 진지(陣地)라는 이름을 가진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시자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의 ‘문화진지론’을 떠올리게 한다. 그람시는 “시장경제 시스템은 자본과 경찰과 군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주류 제도권이 이끄는 ‘문화적 헤게모니’에 의해 유지된다. 주류문화에 대항해서 공격하는 ‘문화진지’를 구축해 ‘진지전’을 전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유럽 같은 자본주의가 발달한 사회에서는 제정 러시아처럼 군대와 경찰을 직접 공격하는 ‘기동전’에 의한 혁명은 불가능하며, ‘진지전’을 통해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해야 한다는 논리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도 사회운동 세력은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문화진지를 더욱 공고히 구축해 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 공연기획자이자 방송 진행자인 탁현민 씨다. 그의 활약상을 보면 각계의 진보 인사들이 어떻게 연결돼 사회 정치적 힘을 발휘하는지 알 수 있다. 참여연대에서 사회운동을 했던 그는 방송인 김제동 씨와 가수 윤도현, 김C, 정태춘 씨 등이 소속돼 있는 다음기획에서 일하면서 공연연출가로 유명해졌다.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추모공연 ‘다시 바람이 분다’를 기획했던 그는 나꼼수 공개 방송과 김제동의 토크콘서트를 연출하면서 정치시사 토크와 콘서트를 결합한 새로운 공연을 선보였다. 공연 때마다 조국 서울대 교수, 소설가 공지영과 이외수, 방송인 김미화, 가수 윤도현과 강산에, 만화가 강풀, 정연주 전 KBS 사장 등이 게스트로 초청됐다. 지난 대선에는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야외 유세를 총괄 기획했다. 시민단체, 나꼼수, 트위터, 연예계와 정계 인물을 엮어낸 탁 씨에게 민주당이 얼마나 기댔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통기한이 끝난’ 나꼼수는 지하 진지를 구축하고 재기를 준비하고 있다. 재기의 무기는 24시간 보도 중심 방송인 ‘국민TV’다. 김용민 씨가 낸 아이디어인데 MBC 파업 해직기자들이 만든 ‘뉴스타파’ ‘고발뉴스’와 ‘아프리카TV’ 등 각종 인터넷 방송을 셋톱박스를 통해 TV로도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 팟캐스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뉴미디어 대신 올드 미디어로 회귀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꼼수가 대선 패배 후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올드 미디어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씨는 최근 서울 노원을 지역구 위원장직을 사퇴하고 국민TV 방송설립준비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다음 달 3일 서울시 신청사 8층 다목적홀에서 ‘국민TV’ 발기인대회가 열린다. 이날 행사에는 대선 후 침묵에 빠졌던 진보 진영의 인사들이 대거 참가할 예정이다. 이달 6일엔 이곳에서 오마이뉴스가 주최한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의 특강도 열렸다. 5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이 홀은 요즘 진보 진영의 새로운 ‘문화진지’로 주목받고 있다.

1 대 9의 비밀, 진보 편향 부추기는 상업주의

창비와 나꼼수에서 보듯 올드 미디어와 뉴미디어 시대 모두 문화 권력은 진보가 대세다. 문화란 원래 기존 질서에 저항하면서 창조해내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든 문화는 진보적이기 마련이다. 1960년대 미국 우드스톡 페스티벌에 참가한 이들은 ‘상상력에 권력을!’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이문열 씨는 “지난 대선 결과만 보더라도 우리 정치 지형은 52% 대 48% 정도로 좌우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유독 문화계에서만 1 대 9 정도로 좌편향이 심하다. 이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말대로 한국 문화 권력의 좌편향은 정도가 심하다. 이는 1970, 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 진보 진영의 문화투쟁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민족문학, 민중미술, 마당극 운동을 주도하던 진보 진영은 1990년대 초반 ‘KBS MBC 대파업’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 등 방송 및 영화계 운동에서도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 반면 정치 및 경제 권력과 같은 기득권에 취해 있던 보수 진영은 문화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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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00년대 후반 진보 인사들의 사회적 발언은 SNS의 도움으로 증폭됐다. 대중적 파급력은 막강해졌고 그들의 권력도 커졌다. 누적판매 1000만 부의 작가 공지영 씨와 배우 김여진 씨 등은 뉴미디어에서의 활발한 발언으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한진중공업 사태, 반값 등록금 논쟁, 홍익대 청소노동자 권익 문제 등을 주요 의제로 설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노동운동이 진보 진영의 명망가들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심화되자 ‘노동 없는 노동운동’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영화계에서는 대중문화계를 장악한 진보 세력이 거대 자본의 상업주의를 만나 더욱 커진 측면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는 보수 색깔의 영화를 제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면 알 수 있다. 김학순 감독은 2002년 발생한 제2연평해전에 관한 영화를 7년째 찍고 있다. 2006년부터 이 영화를 준비해 온 김 감독은 2012년 제2연평해전 10주년에 맞춰 그해 6월 말 개봉할 예정이었다. 해군본부의 지원을 받아냈고 주연 배우 정석원(고 윤영하 소령 역)도 캐스팅했다. 문제는 60억 원의 제작비. CJ E&M,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등 영화계 메이저의 문을 두드렸지만 모두들 난감해했다.

“대기업들이 정치권 눈치를 심하게 보는지 ‘이 영화를 지원했다가 정권이 바뀌면 부담감이 클 것 같다’ ‘대선 결과가 나온 후에 보자’고 하더군요. 투자를 약속했던 한 창업투자사는 대선 직전 ‘정권이 바뀌면 (이 영화에 투자했다는 사실 때문에) 주가가 떨어질 것 같다’며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제2연평해전을 소재로 한 영화는 예전에도 여러 편 기획됐었다. 2009년 곽경택 감독은 현빈 주진모 이정진 씨를 내세운 ‘아름다운 우리’ 제작계획을 발표했고, ‘튜브’의 백운학 감독도 ‘연평해전’ 촬영 계획을 밝혔으나 두 편 모두 기업투자를 끌어내지 못해 제작이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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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donga.com/3/all/20130223/532402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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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민 — 조희연 — 참여연대 — 성공회대 — 신영복 — 노무현

[ …… 1990년대 말 조희연 교수의 권유로 참여연대 간사를 맡아 …….

…… 윤도현밴드·강산에·정태춘-박은옥·들국화 …….. ]

잘나가던 상업 연출가 탁현민이 시사 토크쇼 손댄 계기는?

2012-05-01

[이사람] 공연으로 관객 꼬시고, 트위터로 대중과 통하고
‘탁현민의 멘션s’ 펴낸 공연연출가 탁현민씨

트위터는 MB시대 유일 소통창구
나꼼수와 김제동토크쇼 등 기획
노무현 서거 ‘충격’ 시사공연 탐구

‘버라이어티 가카 헌정공연 나는 꼼수다’, ‘김제동 토크 콘서트’ 같은 시사 토크쇼 기획자로 이름난 탁현민(40·사진)씨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대중들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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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오로지 ‘촉수’가 공연에 닿아 있는 그지만 애초 연출을 전공하거나 연출가의 길을 선택한 건 전혀 아니었다. 춘천에서 살던 고교 시절 방황하던 중에 우연히 을 읽고 절망 속에 희망 같은 따뜻한 감동에 끌려 신영복 교수가 가르치는 성공회대 사회학과에 진학한 것이 계기라면 계기였다. “교내에 있는 예전음악연구소에서 조교를 맡았는데 운영이 어려웠어요. 파이프오르간과 해금을 결합한 공연으로 기금 모금을 했는데 뜻밖에 성공을 거둬 컴퓨터도 장만하고 홈페이지도 만들 수 있었죠.”

그때 경험으로 ‘사람 모으기’(팬덤)의 감동과 힘을 발견한 그는 1990년대 말 조희연 교수의 권유로 참여연대 간사를 맡아 회원 확보와 기금 마련을 위한 공연을 기획했다. 첫 연출에서 손꼽히는 대중가수 ‘자우림과 이은미’의 공연을 성공시킨 그는 윤도현밴드·강산에·정태춘-박은옥·들국화·전인권·이상은·여행스케치·크라잉넛·신해철-비트겐슈타인·김광진·한영애 등등 당대 대표 대중음악인들과 호흡을 맞췄다.

“초기 6년간 상업적 연출가로 명성도 얻고 돈도 벌었던” 그가 정치 현실을 겨냥한 시사 토크쇼 연출가로 변신한 것은 2009년 6월 노무현 대통령 추모공연 이후부터다. “그때 광주에서 공연하는 중에 서거 소식을 들었는데 너무나 비극적인 상황이 믿겨지지 않았어요. 생전에 전혀 인연은 없었지만, 숨이 막히도록 답답했어요.”

추모 공연을 기획하며 슬픈 상황과 즐거움을 기대하는 연희 형식의 결합이 고민스러웠던 그는 이후 홀로 우드스탁을 답사하고 연구하며 ‘집회성 공연’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김제동과 ‘나꼼수 4인방’의 재기발달한 입담으로 딱딱하고 우중충한 현실 문제를 풀어내는 ‘시사 토크 콘서트’ 형식은 그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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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꿈은 민초들의 생명력과 독재에 항거하던 마당극의 맥을 잇고자 했던 문호근 선생 같은 연출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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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530747.html#csidx41fb7c2da41c5d0a22af49f5fadcb8a

전교조 교사와 좌편향 서적 비율

학교도서관 둘러싼 ‘이념 진지전’ 좌편향 심각

자유경제원, 전국 도서 350만권 분석..김일성 3부자 관련 230권

유경표 기자 2014.08.07

전국 각 지역 학교도서관에 비치된 도서들의 이념편향성이 심각히 편중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전교조 교사비율이 높은 학교의 경우 특정 출판사 및 저자의 도서 비율이 매우 높은 반면, 대한민국 건국에 관한 책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은 6일 서울시 여의도 자유경제원 5층 회의실에서 ‘학교도서관 비치 도서: 어떻게 편향되어 있나’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토론회 발제는 조형곤 21세기미래교육연합 대표가 맡았고 이명희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이원우 미래한국 편집장,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 홍수연 전진학원 원장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토론회에서 이념과 세대갈등의 원인 중 하나로 좌편향된 학교도서 보급이 지적됐다. 토론자들은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고 시장경제를 폄하하는 내용의 도서가 무방비로 학생들에게 노출돼 학생들의 올바른 가치판단 형성을 저해한다고 분석했다.

조형곤 대표는 발제문에서 “전국 1만 1천개의 초중고등학교 도서관 도서구입목록을 분석한 결과, 전교조 회원이 많은 학교와 교총회원이 많은 학교의 도서구입 양상이 상당히 다르게 나타났다”며 “전교조가 많은 학교는 ‘창작과 비평사’, ‘나라말’과 같은 특정 출판사들의 도서가 지나치게 많이 구입됐고 이들 출판사들은 좌파성향 작가들이 대거 소속된 출판사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학교에 보급된 도서 중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과 자유민주국가의 수립, 산업화와 민주화에 관한 도서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며 “문제 해결을 위해 양질의 고전도서 할당제를 시행하고 청소년 권장도서 선정위원회 또는 좋은 책 보급운동본부 등 양서보급운동이 일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조형곤 대표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현대사를 다루는 서적들의 편중성이 특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학교의 현대사 인물관련도서 보급 수량을 파악한 결과 건국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책들은 초·중·고 도서 350만권 중 96권에 불과했다. 반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부자에 관한 책은 230권으로 두 배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진 토론에서 이명희 교수는 조형곤 대표의 견해에 동의한다는 뜻을 나타내며 “전교조 조합원 교사가 많은 학교의 장서 실태는 정말 충격적”이라며 “학교의 도서관조차 어떤 특정한 목적에 의해 이용당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학교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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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 ….. 학생운동 지도부가 대한민국 야당의 중심부를 장악 …….

….. 언론계, 출판계, 문화계, 법조계, ….. 사회 곳곳에 지지 그룹을 가진 가장 강력한 집단 ……..

…..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집단 ……… ]

한국을 反美 기지로 만든 전대협

[이동호의 시대추적] 전향한 운동권 핵심인사의 참회록①

미래한국 2015.08.27

1980년대 학생운동의 주역 전대협과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론(NLPDR)

전대협 출신들이 정치권의 중심 차지하면서 한미동맹 급속 악화, 反美, 북한 지도자와 북한 核 두둔, 한국 현대사 왜곡…

이 글은 한때 잘못된 사상과 인식 위에서 자랑스러운 우리 현대사를 흠집 내고자 했고, 잘못된 길로 가자고 주장했던 저에 대한 고백입니다. 과거의 학생운동 경력이 더 이상 자랑스러운 훈장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우리 사회에 대한 부끄러운 기록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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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전대협에 주목해야 하는가?

1980~90년대 한국의 학생운동은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 약칭)과 그의 후신인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약칭)이 주도한 시대였다. 한국 학생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격렬하고 그 규모가 압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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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이 흐른 지금, 당시 학생운동 지도부는 우리 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하여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민련) 지도부에 그들의 이름을 내걸고 있다. 새민련 지도부뿐만이 아니다. 국회의원, 당료, 실무자, 보좌관 등 새민련 곳곳에서 학생운동권 출신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학생운동 지도부가 대한민국 야당의 중심부를 장악하고 한국 정치의 중심으로 진출해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이제 변방의 소수가 아니다. 언론계, 출판계, 문화계, 법조계, 여성계, 시민운동 단체, 노동운동계, 농민운동계 등 우리 사회 곳곳에 지지 그룹을 가진 가장 강력한 집단으로 성장했다.

전대협 출신의 학생운동 그룹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집단이라고 평가해도 과장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이 과연 어떤 사상과 관점을 지니고 있는가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행로를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문제다.

전대협 출신들의 정치적 지향점과 특징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들이 활약한 소위 진보정권 시대서부터 한미동맹은 급격히 약화되기 시작했다.

우리 국민들 사이에 남북 분단의 원인을 미국이 제공했다는 터무니없는 날조된 망발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고, 오늘날 남북한 간의 갈등의 배경이 미국의 강경정책 탓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수가 과거에 비해 급증했다. 만연된 반미(反美)감정은 우리 국력이 성장한 만큼 우리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으로 인식하기에는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

반면에 북한 정권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론이 주도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 북한 핵에 대해 두둔하기까지 했다. 노무현 정부 이후 현재까지 전대협 출신이 북한 핵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발언을 들어본 적이 없다.

전대협 세대의 특징은 북한에 대해서는 기이할 정도로 관대하다. 국제사회가 그 심각성을 공감하고 있는 북한 동포들의 인권문제에 어느 누구하나 진지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을 촉구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북한 인권문제는 북한 내부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반면에 미국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적대적이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가 자랑스러운 승리의 역사가 아니라, 오욕과 굴절로 얼룩진 수치의 역사라는 좌파들의 주장에 이르러서는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고 있다.

이들의 이런 관점과 태도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이들의 현실 인식은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진행된 좌파적 사회운동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고, 30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서도 그 근본이 바뀌지 않은 채 곳곳에서 집단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들에 대해 권위주의적 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이며, 사회가 선진화를 위해 치르는 대가 정도로 생각하여 관대하게 바라봤다. 좌파적 사회운동에 대한 주류사회와 지식인 사회의 안이하고 무사 안일한 대응으로 인해 이들은 우리 국민들의 인식의 혼란을 효과적으로 이뤄 냈다.

다수 국민들은 좌파적 사회운동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잘 깨닫고 있지 못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의 핵심에는 아직도 1980년대식 좌파적 사고에 절어 있는, 이제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된 세력의 편향된 인식에 그 원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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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998

2016.7. 양동안

[ …… 지금은 우리 사회 대부분의 영역에서 좌익이 헤게모니를 장악 …….. ]

양동안 ‘우익은 죽었는가?’ 그 후 30년…좌클릭 치닫는 위험사회

끝나지 않은 사상전쟁…민주화 탈 쓴 사회주의 혁명투쟁·진보 용어 내세운 진지전

2016-07-14 편집국 기자

우익은 죽었는가? 그 후 30년

1. 1988년, 서울, 양동안

나는 1982년부터 우리 사회에서 진행 중인 혁명적 좌익세력의 동향에 대해 주의 깊게 관찰해왔다. 1984년부터 대학생들이 뿌린 유인물의 내용을 보면서 학생운동의 중심세력이 좌익혁명세력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고, 1986년 학생들이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을 자기들의 당면 목표로 설정한 것을 보면서 학생운동의 핵심부는 좌익혁명세력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1987년 좌익혁명세력이 6·10항쟁을 주도하고, 그해 7~9월 과격한 노동자 대투쟁을 이끄는 것을 보면서 좌익세력의 위력을 실감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차질 없는 개최를 위해 정부의 좌익세력에 대한 통제가 완화되자, 좌익세력은 그 틈을 이용해 이른바 ‘조국통일투쟁’을 전면에 내걸고 군중집회와 시위를 한층 강화했다.

그들은 ‘올림픽 공동개최’와 ‘반전반핵’을 외쳐대며 대한민국의 정상적 기능을 마비시키려고 달려들었다. 그해 6월 10일 6·10항쟁 1주년을 맞이하여 좌익은 남북학생회담 실현을 주장하며 서울 서북부지역과 판문점으로 가는 도로에서 격렬한 시위를 전개했다.

경찰의 희생적인 노력으로 좌익이 주도하는 대학생들의 판문점행은 저지되었다. 판문점으로 가려는 대학생시위대의 큰 규모와 격렬함이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지만, 필자에게 보다 큰 충격을 준 것은 좌익의 시위에 대한 시민들과 야당의 반응이었다.

TV화면에 비친 시민들은 “학생들이 판문점 가겠다고 하면 가게 하지 왜 못 가게 해”라며 시위대의 판문점 행을 저지하는 공권력행사를 비난했다. 야당들은 좌익이 주도한 그런 군중투쟁을 방조적 태도로 침묵했다. 시민들과 야당들의 그런 태도를 보면서 나는 ‘큰 일 났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이젠 공권력만으로는 좌익세력의 혁명투쟁을 제압하기 어렵게 되었으며, 좌익의 체제전복 투쟁을 저지하려면 민간인들의 건전한 우익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나로 하여금 「우익은 죽었는가?」라는 논설문을 작성하게 만들었다. 6월 하순에 탈고하여 신생 월간지 『現代公論』에 넘겼고, 7월 하순에 배포된 『現代公論』 8월호에 게재되었다. 「우익은 죽었는가?」의 요지는 “정부나 언론매체가 좌경세력이라고 부르는 세력은 사회주의혁명을 추구하는 좌익세력이고, 그들은 민족주의세력이나 민주주의세력으로 위장하여 각 분야에 침투해서 혁명을 일으키려 하고 있으며, 우익이 그들의 정체를 정확히 인식하고, 그 동안의 무기력과 오류를 반성·궐기해서 좌익세력을 제압·제거하지 않으면 머지 않은 장래에, 좌익세력과 제휴한 세력의 정권이 들어서고, 그 다음에는 좌익세력이 주도하는 연합정권이 들어서고, 그 다음엔 완전한 좌익정권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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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6일 한겨레신문과 동아일보가 내무부의 조치를 비난하는 기사를 보도했다. 한겨레신문은 이 날부터 시작하여 무려 10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우익은 죽었는가?」의 내용과 나에 대해 비난하거나 부정적으로 보도하는 기사, 사설, 칼럼, 가십, 만평, 단신 등을 게재했다. 놀랍게도 동아일보도 며칠 동안 비판적 기사 사설 칼럼 등을 연속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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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반응과 관련하여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조선일보 등 오늘날 ‘보수 신문’으로 분류되는 신문들도 나를 비판하는 글들을 게재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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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정문연 노조와 학생들은 안에서 갖가지 방법으로 양동안에게 사퇴압력을 가하고, 평민당은 밖에서 양동안을 사퇴시키라고 다양한 방법으로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했다. 김대중씨가 직접 나의 해임을 촉구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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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미한 충격

내가 「우익은 죽었는가?」를 쓴 것은 우경 성향의 정치 엘리트, 지식인,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서였다. 당시 나는 10년 내외에 한국에서 사회주의혁명 혹은 그에 가까운 혼란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혁명 비슷한 사태가 초래될 것으로 예상했다. 다행히 이런 예상은 빗나갔다. 당시 내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동구 공산국가들의 붕괴라는 엄청난 요인이 돌발한 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 글은 우경 성향의 인구들에게는 미미한 충격밖에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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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내 글은 좌경인구를 많이 자극했고,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들의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유도했다. 자극 받은 좌익은 제2, 제3의 양동안이 나타나면 국민이 진실을 깨닫고 좌익에 반격을 가하게 될 것이므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양동안에 대해 무자비한 비난과 핍박을 가한 것이다.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들은 자기들의 상황분석이 잘못되었음이 드러난 것, 민주화에 도취된 행복감 등 때문에 나를 비판했다.

과거에는 나와 어울리던 우경 지식인들도 나를 멀리하려 했다. 나와 가깝게 지내면 극우 파시스트로 낙인찍힐 것이 우려되어서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나의 완고한 반공입장을 비판하기까지 했다. 그들 중에는 공산당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도 있다. 사상의 자유시장론과 냉전소멸론을 거론하면서… 사상의 자유시장론은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등장하면 적용될 수 없는 아이디어이며, 냉전소멸론은 국가 간의 대결 양상이 지역에 따라 판이할 수 있다는 점을 모르는 구상유취한 소리다.

결국, ‘우익은 죽었는가’는 당초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채, 나만 왕따 당하고 괴롭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동구 민주화가 본격화되면서 남한 사회에서는 ‘이제 공산주의는 죽었다’는 타당치 않은 인식이 널리 확산되었다. 우리 사회의 좌익에 대한 나의 경고는 ‘재떨이 속의 불꽃을 보고 화재 났다고 호들갑 떠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나는 김영삼 정권에 좌익-좌경인사들이 많이 들어가는 것을 경고했다가 그 정권으로부터 기피인물로 취급되었다.

이 나라의 좌익세력은 1993-4년 무렵부터 진지전 위주로 전략을 바꾸었다. 좌익의 진지전 본격화는 좌익이 자신들의 사회적 명칭을 진보진영으로 내 세우기 시작한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의 진지침투는 매우 쉽게 진척되었다. 우경인구들이 좌익의 진지전에 반감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동전과 달리 진지전은 사회적 소음을 유발하지 않기 때문에 대중은 좌익의 조용한 진지침투를 사회적 평화의 도래쯤으로 착각하여 반기는 편이었다. 나아가서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들은 좌익의 진지전을 반체제분자들이 체제 내화되는 현상으로 미화했다. 좌익의 진지전에 대한 초보적 지식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좌익은 짧은 기간 내에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 침투하여 헤게모니 장악의 발판을 확보했다. 이것이 1990년대 후반까지의 상황이다.

3. 1988년과 현재의 사상 상황 비교

우경인구의 사상 문제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그리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민·고생하기보다는 아예 문제를 외면하려는 경향 때문에, 좌익세력의 위협에 대한 나 같은 사람들의 경고는 별 효과가 없었고, 좌익의 진지전 공세는 쉽게 성공을 거두었다. 좌익 내지 좌경분자들이 정권의 심장부까지 침투된 듯한 현상들이 나타났다. 그런 현상은 이미 YS정권 때부터 나타났다.

YS정권 때 좌익-좌경분자의 정권침투 증후를 알리는 사례로 고영복 간첩사건을 들 수 있다. 고영복 교수는 정문연 세미나 때 특이한 언행을 했다. ‘주사파 과대평가 말자.’고 주장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약 2개월 후에 고교수는 간첩으로 체포되었다. 고교수의 특이한 언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고교수 간첩혐의 수사는 정권 내 고위인사들의 압력과 청탁으로 방해 받아 제대로 수사 못했다.

좌경정권들이 들어선 후 좌익분자들이 크게 굴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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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좌경정권에서 좌익의 진지전은 크게 진척되어 많은 분야에서 그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었다. 일부 부문에서는 헤게모니를 넘어 좌익의 지배가 이루어졌다.

이명박 정권에 들어와서는 좌익분자들에 대한 견제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기대되었는데, 그런 기대는 빗나갔다. 이명박 정권은 출범 초 중도실용주의 노선을 취하겠다고 천명했다. 좌경정도가 상당히 진한 인사들을 청와대 요직에 임명하는가 하면 황석영을 대통령 해외여행에 동반시켰다. 이명박 정권은 민간 부문에서는 고사하고 공공부문에서조차도 좌익의 진지전에 반격을 가하는 일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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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괄적으로 말하자면, 현재의 한국 사상전 상황은 1988년보다 훨씬 우익에 불리하다. 88년에는 좌익이 우세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좌익이 우세한 것으로 판단된다.

1988년에는 좌익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부문은 대학가와 노동운동계뿐이었다. 그 외의 영역에서는 좌익이 상당히 많은 동조자들을 확보하고 있었으나 아직 헤게모니 장악에는 이르지 못했다. 정치권에는 ‘명확한 전향기록이 없는 좌익운동권출신’ 국회의원이 극소수에 불과했고,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미미했다. 공안기관 직원들은 좌익혁명세력 저지에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우리 사회 대부분의 영역에서 좌익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치권만 놓고 보더라도 ‘명확한 전향기록이 없는 좌익운동권출신’ 국회의원은 약 70명에 이른다. 단일 인맥으로는 최대인맥이다. 운동권 출신에다 운동권 주변에서 빌붙어 왔던 인사들을 합하면 그 수가 엄청날 것이다. 그에 더하여 정당의 사무당원들이나 국회의원 보좌관들에 운동권출신이 매우 많다는 점을 고려하게 되면 정치권의 헤게모니는 ‘명확한 전향기록이 없는 좌익운동권출신’들의 손 안에 놓여있다고 말해도 크게 빗나간 말이 아닐 것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 좌익-좌경세력의 헤게모니 밖에 있는 부문은 민간 자본가 사회나 일부 종교집단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사회 각 부문에서의 좌익-좌경세력의 헤게모니가 곧 좌익-좌경세력의 대한민국 지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양자 간에는 아직도 갭이 있다. 물론 그 갭이 메워지는 데는 그다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겠지만 말이다.

대한민국의 우경국민은 좌익-좌경세력의 대한민국 지배를 저지할 마지막 순간에 몰려있다. 사정이 이렇게 다급해졌기 때문에, 나는 28년 전에 했던 우경국민에 대한 질책성 질문을 그 때보다 더욱 참담한 심정으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우익은 죽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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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ediapen.com/news/view/167437

극단 서울괴담, 마을에선 ‘진지전’ 거리에선 ‘기동전’

2016-07-17

유영봉이 이끄는 주민밀착형 극단
오선아 배우와 결혼식도 거리예술로
신혼 전셋집은 극장·레지던시 기능
“올가을 도서관 열람실서 공연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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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괴담은 주민 밀착형 극단이다. 성북동 북정마을을 거점으로 거리예술을 펼쳐왔다. 마을을 통해 ‘예술의 진지전’을 벌이는 한편, 거리로 나가 ‘예술의 기동전’을 동시에 수행해왔다. 지난 13일 유영봉 서울괴담 대표를 서울 홍대 앞 ‘미디어카페 후’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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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752684.html

[ …… 운동권 세력들이 문화권력을 장악하고 진지전을 …….

……. 민중/민족주의 영화들의 문제와 그들과 함께 기생해 온 한국영화 평론들 ……. ]

인천상륙작전은 좌파 점령 영화계 우파 상륙작전

좌파 문화권력과 전면전…한국영화 100년사 영화사조적 형식 갖춘 유일한 ‘반공영화’

2016-08-12 편집국 기자

할 말이 많다. 할 말이 너무도 많다. 이 영화에 대해, 정확히 말하자면 이 영화가 향후 한국영화계에 가져올 역할론에 대해 말하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할 말이 너무도 많아서 어떤 말부터 먼저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한국영화 100년사에 유일하게 영화사조적 형식을 갖춘 ‘반공영화’의 의미와 이 영화와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에 대한 중요성, 385 운동권 세력들이 문화권력을 장악하고 진지전을 펼치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민중/민족주의 영화들의 문제와 그들과 함께 기생해 온 한국영화 평론들의 삐딱한 시선들의 문제점들이 모두 한 뿌리에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민 고민하다가 이번에는 한국영화의 평론문화에 대해서만 얘기를 하려한다. 내가 심형래 감독의 ‘디 워’ 이후 한국 영화평론에 문제를 삼은 지 딱 10년만의 일이다. ‘인천상륙작전’의 영화사적 가치는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한국의 영화평론가들이 왜 ‘인천상륙작전’을 비판해야만 하는지 알기 위해 우리는 다시 지긋지긋한 1980년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

1980년, 대학을 중심으로 ‘전국대학생영화동아리연합’이 만들어지면서 주체사상의 이념투쟁 수단으로 영화가 사용되고 그들은 졸업 후 사회 각 층으로 뻗어 나가며 진지전을 펼친다.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은 상업영화계로 가서 민족영화의 틀을 다지고, 이념성향이 강한 자들은 독립영화계로 흘러 들어가 ‘푸른영상’이나 ‘장산곶매’ 등을 만들어 노동운동과 반국가적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상업영화 감독으로는 ‘정지영(남부군,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천안함 프로젝트 등)’ 감독이 있고, 한국 독립영화의 시작으로 대우받고 있는 장산곶매의 ‘파업전야’, ‘닫힌 교문을 열며’, ‘오, 꿈의 나라’등이 있다. 2016년 올해, 정지영 감독은 거의 유일하게 정치색이 없던 부천국제영화제의 조직위원장이 됐다.

또 다른 부류로 머리가 똑똑한 사람은 대학 교수가 되어 이들의 영화를 학교 안으로 끌어오고, 그들의 영화를 체계화하여 한국영화의 이론적 틀을 바꾸어 버렸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부산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지내며 ‘다이빙벨’ 논란을 일으켰던 ‘이용관’ 교수이며, 그의 또 다른 직업은 ‘영화평론가’다. 그는 1990년 4월 20일 한겨레 신문에 ‘파업전야, 민족영화 모범 아닌가’란 칼럼을 통해 장산곶매가 만든 사회주의 노동운동 영화인 ‘파업전야’를 한국영화의 희망으로 묘사하며 등장했다. 그것을 계기로 부산 경성대 교수에서 서울의 중앙대로 무대를 옮긴 그는 ‘한국영화를 위한 변명’ 등 그의 저서에서 민족/민중영화를 변호하며 부산국제영화제의 수장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당연히 그의 제자들은 영화계로 진출해 그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고 있고, 그의 지시대로 지난 대선에서 좌파의 정권 재창출을 위한 영화인들의 무수한 지지선언이 뒤따랐다.

그런 이용관씨를 한겨레 신문을 이용해 키워낸 사람은 바로 ‘안정숙’ 기자였다. 1988년, 한겨레에 문화부 기자로 입사한 안정숙은 1999년 영화진흥공사를 영화진흥위원회로 바꾸고 난 뒤 첫 영진위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씨네21이 생기면서 편집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2005년 드디어 제 3기 영화진흥위원장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 안정숙 전 위원장의 남편은 더불어 민주당의 ‘원혜영’ 국회의원이었던 관계로 국회에서는 영진위의 방만한 운영에 대해 대충 대충 넘어가는 특혜를 누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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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의 성공과 ‘연평해전’의 성공으로 우파에서도 자신들의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국제시장’은 우파영화가 아니었지만 우파 스스로 우파영화로 모양새를 잡는데 성공하였고, 그 힘을 계기로 좌파 영화평론가들의 실체를 벗겨 내는데 성공했다. 그 성공의 힘은 ‘인천상륙작전’이 개봉하면서 폭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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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라건 지금 한국의 영화계는 전쟁 중이며, 어찌 보면 지금이 가장 중요한 전쟁 시기다. 오늘 이 세미나와 ‘인천상륙작전’의 개봉이 중요한 이유는, 그간 문화권력을 통제 없이 마음껏 누리던 영화계 좌파들을 비판하며 우파에서 첫 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평론가들의 비정치적이라는 비겁한 변명과는 상관없이 지금 영화계는 이념전쟁으로 돌입했다. 좌파는 정치권까지 나서 자본주의와 개인주의, 정부를 비판하는 ‘부산행’에 덤벼들고 있고, 홍준표 지사를 비롯한 우파 정치인들도 정면으로 좌파 문화권력을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작전과 전장으로 볼 수 있는 평점과 관객 점유율에서는 분명 지고 있는 모양새다. 부산행과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평론가들의 시선을 비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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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영화는 6.25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과도 같은 형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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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영화계와 전쟁은 이 영화를 계기로 2차전으로 진입했다. 영화제작이라는 1차전을 끝내고, 이제는 평론계라는 2차 진지와의 싸움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 3차전인 ‘배급망’과의 전쟁이 남아있고, 4차전인 국지전 형식의 ‘작은 영화(독립영화라 불리는)’의 확전이 남아 있다. 이데올로기 싸움의 극단을 달리는 독립영화와의 전쟁은 그래서 제일 마지막의 혈투가 될 것이다. 아직 우파는 인지하고 있지 못하지만 이 전쟁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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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

[ ….. 대한민국은 지금 4세대와 5세대가 혼합된 전쟁 중이다. …….. ]

대한민국 ‘문화 안보’ 핵심을 말하다.

특검서 ‘블랙리스트’ 확보? 뻘짓하지 말라!

이용남 칼럼 2016.12.30

대한민국 문화안보 핵심을 말하다.

이용남 /청주대 교수

대한민국은 이념전쟁중

대한민국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혹자는 6‧25 남침전쟁 정전 63주년이나 지난 지금 무슨 이념전쟁 타령이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태극기집회와 촛불집회 양상을 보면 이념 대립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다만 무기형태가 태극기와 촛불로 진화되었을 뿐이다.

세대별 전쟁양상을 보자.

1세대 전쟁은 소총을 든 징집병들이 등장하는 ‘나폴레옹전쟁’이다.

2세대 전쟁은 국가 자원을 총동원해 싸우는 총력전으로 포병 화력이 전황을 좌우한 ‘남북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이다.

3세대 전쟁은 무기체계 발달로 진지전 대신 기동전이 된 ‘제2차 세계대전’이다.

4세대 전쟁은 심리전‧미디어전‧테러 등으로 사회분란을 조성하는 ‘비대칭‧비정규’ 전력에 초점을 맞춘 전쟁이다.

5세대 전쟁은 ‘사이버전’으로 일거에 국가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는 ‘블랙 스완(Black Swan)’으로 불리는 전쟁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4세대와 5세대가 혼합된 전쟁 중이다.

혼합전쟁은 이념의 충돌이며 재래 병력이 아니라 비정규 전사들에 의해 수행되는 전쟁이다.
한 가지 예로 베트남전쟁에서 북베트남이 미국사회 지식인과 대학생을 겨냥해 펼친 분란전과
심리전으로 미국 내부에서는 대대적인 반전운동(反戰運動)이 일어났다.

대한민국은 이념전쟁중이다.

이념전쟁은 역사전쟁과 문화전쟁으로 전개되고 있다. 역사전쟁 무기는 교육이며, 문화전쟁 무기는 매스미디어와 소셜미디어다.

대한민국은 이념전쟁에서 이미 북한에게 패배하고 있다.

지난 촛불집회에서 청소년들이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권 세워내자”는 문구가 쓰인 플래카드를 들어 사회적으로 큰 공분을 산적이 있다. 그들이 이번에는 “청소년이 앞장서서 헬조선을 갈아엎자”는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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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국은 반(反)대한민국 세력들의 반란(叛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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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6/12/29/2016122900053.html

“문화안보가 대한민국을 살린다”

 이용남 차세대영화인협회 대표

 2017.04.21

문화좌파는 대한민국 좌경화의 선봉

대통령 탄핵사태는 대한민국이 문화전쟁에서 처절하게 패배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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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평화, 민주, 민족, 통일, 진보 같은 용어전쟁과 이념전쟁을 통해 386세대들의 의식을 잠식했다. 그 결과 1980년대 중반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이 공고하게 구축해왔던 대한민국의 이념과 가치가 와해되기 시작했다.

지난 30년 동안 대한민국의 문화권력은 종북 좌익세력이었다. 그들이 문화전쟁 전범의 주체다. 그들의 목표는 바로 대한민국의 좌경화였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대통령 탄핵은 좌파 문화권력이 만든 사회 분열이 국가안보에 더 치명적임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종북 좌익세력은 철저하게 자신을 민주주의자 혹은 평화주의자로 위장해 각자의 진지에서 문화전쟁을 수행하며 끊임없이 내부 분열을 조장했다. 서서히 국민의 의식을 좌경화시켜 국민 스스로가 혁명 세력의 진정한 일원이 되어 광장의 촛불이 되게 했다. 대한민국에서 안토니오 그람시가 꿈꿨던 혁명의 진지전(war of position)은 이렇게 실현되었다.

대중문화는 국민의 사고와 행동에 더 강한 영향을 준다. 대중문화는 문화전쟁의 최대 격전지다. 특히 스타가 주도하면 그 파장력과 파괴력의 최대치는 핵폭탄의 위력에 맞먹는다. 문화전쟁이 무서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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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의 문화전쟁 표적은 영화계였다. 배우 문성근과 명계남이 새천년국민회의 의원들과 접촉하면서 정치적 활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충무로 포럼’을 통해 기존 영화인들과 정책을 비판하면서 영화계의 좌파 문화권력을 구축했다. 그 결과 영화법을 영화진흥법 체제로 바꾸고, 영화진흥공사를 영화진흥위원회로, 공연윤리위원회를 영상물등급위원회로 개편했다.

이 시점부터 영화계는 민족(반일 정서와 ‘우리민족끼리’의 민족의식), 민중(반정부, 반기업, 반사회, 반미, 반 대한민국 정서), 민주(5·18과 386운동권)의 삼민주의 프레임 영화가 집중적으로 제작되면서 대중영화를 통한 대한민국의 좌경화가 본격화 된다.

영화계 좌파 문화권력과 정치권(더불어민주당)은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의원 모임(19대, 20대 국회)으로 계속 연대하고 있다. 이는 삼민주의 프레임과 선거용 기획 영화가 지속적으로 제작되고 상영될 수 있는 원동력이자, 부산·전주·부천 국제영화제와 독립영화계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노무현 정부(2003~2008년)에서는 확고한 좌파 문화권력 시스템을 확립한다. 노무현 정부의 문화전쟁 표적은 지원금과 기관 장악이다. 문화예술 지원 사업을 민간 주도로 운영한다는 명분으로 문화예술계의 돈줄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출범시킨다. 지원 사업에 의존하는 문화예술계의 통제 기관을 만든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문화권력 장악

노무현 정부는 노골적이고 편파적으로 돈과 조직을 좌파 문화권력에 집중했다. 대표적인 수혜 단체가 민예총과 문화연대다. 당시 민예총 지원은 늘고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 지원은 감소했다. 실제로 회원 10만 명으로 5000만 원을 지원받던 민예총은 2000년 2억 5000만원, 2004년 5억 8000만원으로 지원금이 증가했다. 2006년에는 회원 38만 명의 예총은 19억 원, 민예총은 22억 원으로 역전된다.

노무현 정부의 코드인사는 지독할 정도다. 진지 구축은 문화 현장에도 있지만 공직과 각종 정부 위원회까지 침투했다.

현기영(민족문화작가회의)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한국문화예술위원회), 김윤수(민예총) 국립현대미술관장, 김철호(민예총) 국립국악원장, 한국영상자료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11명 중 9명), 장관 정책보좌관, 문화관광정책연구원장, 국립민속박물관장, 국립연극원장, 문화재청장 등 거의 민예총 인사들이다. 김명곤 전 문화부 장관도 민예총 출신이다.

노무현 정부의 지원금과 코드인사는 구복지계(口腹之計)를 찾는 문화예술인을 좌익 세력으로 흡수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좌파 문화권력 시스템을 통해 전방위적인 좌경화가 지금까지 전개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2008~2013년)에서 기울어진 문화예술계의 균형을 맞춰보려고 사령관(기관장)들을 교체했다. 그러나 사령관이 바뀐다고 저변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조직 안에서 그들끼리 힘을 모아 사령관을 내쫓는 현상이 일어났다.

박근혜 정부(2013~2017년)는 사령관 교체만으로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는 좌파 문화권력을 바로잡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편향된 ‘지원’의 문제점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비정상적인 지원을 정상화시키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바로 ‘문화융성’이란 슬로건이었다.

대통령은 헌법에서 명기한 대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어긋나는 활동을 하는 개인이나 단체에 대해 국민 세금 지원을 배제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부정하고 위협하는 개인과 단체에 대해 혜택을 주지 않을 수 있다. 이는 권한의 불법행사나 직권남용이 아니라 대통령의 합법적 국정 수행이다.

문화안보가 있어야 문화전쟁도 가능하다

블랙리스트는 문화안보리스트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 질서를 비판하고 전복하려는 세력들에게 단 1원의 혈세도 지원해서는 안 된다. 이런 원칙을 준수한 문화안보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대통령 전 비서실장과 장관을 구속했다는 사실이 국정농단이자 내란이다.

이제라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이처럼 192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문화전쟁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확립한 문화권력으로 대한민국의 좌경화라는 위기를 만들었다. 이제 위기 극복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남았다.

종북 좌익세력의 좌경화 선동에 대응할 깨어 있는 시대정신이 필요하다. 바로 문화안보다. 문화전쟁 시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안보의식은 ‘문화안보’다. 변화된 전쟁 양상과 환경에서 국가안보의 개념과 범위는 ‘국가’와 ‘통일’에서 ‘문화’로 확대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이념과 가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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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안보는 대한민국을 살리는 심폐소생 장치

이제 대한민국을 구하는 방법은 문화안보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식하고 개개인이 문화안보의 주체라는 생각으로 무너진 나라의 기본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올바로 직시해야 한다. 문화안보의 실패가 부를 사회적·경제적 위험을 이번 탄핵사태를 통해 통감했다. 이제 문화안보 시대를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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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9787

2017.7.

[ …… 좌파 진지들은 수백 개 이상으로 매우 견고하게 구축 ……

….. 우파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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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는 교육, 언론, 법, 대중문화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있어서 국가기구에 의한 물리적 강제력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시민사회 내에서 획득되는 ‘대중의 동의’를 통해서 계급에 의한 지배가 이뤄진다고 봤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를 전복시키려면,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이념적 헤게모니를 국가로부터 탈취해 와야 하고 이를 위해 교육, 언론, 학계, 예술, 문화 등 광범위한 분야에 진지(陣地)를 구축하여 대항 이데올로기를 전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유명한 ‘진지론(陣地論, war of position)’이다.

현재 한국의 좌파 진지들은 수백 개 이상으로 매우 견고하게 구축됐다. 현재로서는 우파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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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좌파 정권은 여러 형태로 진지 유지의 경제적 토대를 구축한 반면, 우파 진지는 오히려 경제적 토대를 지속적으로 상실하고 급기야 바른정당에서는 전경련 해체라는 자해(自害) 논리로 무장하고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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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912

대한민국 좌파, 그들은 누구인가
김운회 동양대 교수 2017.07.17

대한민국이 온통 붉은 숲 붉은 진지입니다.

대한민국의 명운이 바람앞의 촛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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